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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평] 홍콩사태와 광주
입력 : 2019년 12월 08일(일) 13:52


윤성석 전남대 정치외교학과교수

11월 19일자 국내 일간신문에 실린 홍콩사태의 한 컷이 놀라울 만치 1980년 5·18 민중항쟁을 대표하는 사진과 판막이처럼 닮아 깜짝 놀랐다. 시위대의 최후의 피신처인 홍콩이공대로 난입한 진압경찰이 ‘얼굴에 피를 흘리며 도로에 걸터 앉아있는 남성 시위자의 머리를 곤봉으로 내리치는’ 장면을 어느 외신 기자가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전송민주주의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한국인들에게는 가슴에 묻어두었던 민주화 시계를 39년 전으로 되돌려 놓게 만들었다. 5·18자료에서 ‘금남로에 꿇어앉아 있는 시위대에게 하얀 띠 철모를 쓴 공수부대가 곤봉으로 내리치는’ 사진을 기억하는가?

올 4월경부터 촉발된 홍콩사태는 초기의 ‘송환법’폐기라는 절차적 시위에서 점점 반중국 체제저항 대결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 끝을 예측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시위 양상도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에게 흥미로운 점은 홍콩 시위대 사이에서 한국의 5·18과 촛불혁명이 롤 모델로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시위가 장기화되면 시위대와 진압대 양측은 각종 도구와 무기를 동원하는 폭력적 대결로 치달아 급기야 사상자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혁명전야 국면에 처하게 된다. 억압적 환경에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시위를 이어가던 홍콩인들에게 한국은 어떠한 의미로 인식되었을까? 특히 5·18항쟁을 동아시아인들이 반드시 배워가야 될 민주화의 모델이라고 39년 동안 국제화사업에 공을 들인 광주에게 홍콩은 어떠한 역사적 책무를 안겨주고 있는가?

근 7개월에 걸친 홍콩사태 기간에 국제적으로 평화시위를 탄압하는 홍콩정부에 대해 정부차원의 항의가 대단히 희소하였다. 각국의 항의가 희소한 이유는 국제정치의 ‘힘의 정치’구조 때문이다. 상하원에서 ‘홍콩인권법’이 제정된 미국이나 공식적인 논평을 내놓은 전임 식민국 영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국가들은 흥미를 갖되 가치평가는 유보하고 있다. 21세기는 인권의 시대이다. ‘인본주의적 개입주의’라는 국제규범이 유엔주도의 국제적 관행과 규칙으로 정상화되고 있다. 최악의 인권말살 국가에 군사적 공격도 불사하는 새로운 국제적 관행도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바로 옆 나라 홍콩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대해 유엔안보이사국의 멤버인 한국은 정작 정부의 공식 표명도 없을뿐더러 시민사회조차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홍콩사태의 발발이후 같은 기간에 우리나라도 조국사태로 심각한 정치사회적 분열과 양극화를 겪었다. 그런데 상대측이 내건 사회정의와 인권의 모순을 지적하며 날선 비판을 가하던 수십 수백 개의 단체들은 인권후진국 홍콩과 중국에 대해서는 유사한 잣대로 해석하지도 않았으며 공식적인 입장표명도 내놓지 않았다. 이는 사후적 해석이지만 대단히 신기할 따름이다.

11월 9일 즈음에야 5·18재단을 포함한 67개 단체가 희생자를 추모하는 성명서 한 장 발표한 것 이외에 한국이 홍콩시민들에게 해준 것이 너무나 없다. 더구나 전국적으로 어느 지역보다 조국장관과 현 정부 보호에 앞장섰던 광주는 정작 도와주어야 될 홍콩에 대해서는 무관심과 냉대로 일관하고 있지나 않았는지 심각한 자기반성이 요청된다. 과연 그동안 광주가 온힘을 다해 추진하였던 5·18국제화 프로그램의 실체와 열매는 실제로 존재하는지 실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5·18재단과 지방정부는 5·18항쟁을 동아시아 민주화 모델로서 주변국들에게 홍보하는 국제화 프로그램에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부었다. 예컨대 시민운동가들을 초청하여 민주화운동 기법도 공유하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한 학술세미나도 수십 차례 열었다. 그런데 홍콩사태는 광주의 5·18 국제화전략의 미미한 확산효과를 반증하고 있다. 광주는 주변 아시아인들에게 민주화의 표상으로서 존경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들의 고통과 지원요청에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5·18 국제화전략의 부메랑 효과는 자명하다. 광주는 민주주의 모델로서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광주의 문화외교는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위 자기반성은 앞으로 제2의 제3의 홍콩사태가 중국 본토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전략 차원에서 긴급히 요청된다. 1997년 등소평과 대처가 맺은 일국양제 시스템의 딜레마로 인해 홍콩사태가 발발했었으며 조만간 더욱 큰 규모로 전개될 것이다. 중국의 빠른 압축성장은 더 많은 자유와 참여를 원하는 새로운 세대들을 양산하기 때문에 공산당 방식으로는 전 중국을 온전하게 통치할 수가 없다. 한국의 제1무역상대국 중국본토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는 경제적인 타격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대처에서 다양한 불확실성을 노정할 것이다. 이에 홍콩사태 이후에도 광주는 매력도시 구축과 국제화전략의 관점에서 주변국과의 관계를 재점검해야 지역경제도 살고 5·18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