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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 교수의 다시쓰는 전라도 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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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37>마한 남부연맹과 서동(薯童)설화上무왕 때 마한 남부연맹 세력이 백제 지배세력으로2019.01.29@ 박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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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36>498년 백제 동성왕의 무진주 친정(親征) 기사 재검토下영역 확대 아닌 단순히 진출로 탐색 시도
476년 문주왕 때 탐모라가 방물을 바친
사실을 가지고 정치적 예속관계로 보는
기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상실되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무렵 마한 연맹체의 여러 나라 가운데2019.01.15@ 박해현 -
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35>498년 백제 동성왕의 무진주 친정(親征) 기사 재검토(上)문주왕 代 마한 남부연맹 복속은 현실적 불가능2018.12.25@ 박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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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34>6세기 마한 연맹 왕국 실체를 밝혀준, 양직공도(梁職貢圖)(下)‘지미’는 마한 남부 연맹 강국 ‘침미다례’로 봄이 타당2018.12.11@ 박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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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32>6세기 마한 연맹 왕국 실체를 밝혀준, 양직공도(梁職貢圖)中고구려·백제·신라 ·가야 이외 여러 국가 존재 확인2018.11.27@ 박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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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32>6세기 마한 연맹 왕국 실체를 밝혀준, 양직공도(梁職貢圖)上6세기도 마한 연맹왕국 실존 사실 알려주는 중요 사료2018.11.06@ 박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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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31>마한의 정체성을 보여준 영암 옥야리 방대형(方臺形)고분下분구 중앙에 수혈계 횡구식 석실묘 단독 축조 등 특이
봉분 내부 구조만 놓고 보면 옥야리
방대형 고분은 전통적인 영산강식
양식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까닭은 영산지중해 입구에
위치한 영암 시종 지역이 남해포라는
국제 무역항을 중심으로2018.10.23@ 박해현 -
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30>마한의 정체성을 보여준 영암 옥야리 방대형(方臺形)고분上‘내비리국’이라 불리는 마한의 대국 성립 사실 증명
옥야리 일대의 마한 대국이
거점 항구인 남해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중개 무역에다
배후의 풍부한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영산지중해의 중심지
되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2018.10.09@ 박해현 -
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29>영암 지역의 마한 왕국 '일난국(一難國)''내비리국'과 서로 경쟁·협조하며 연맹 유지2018.09.11@ 박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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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28>마한의 용맹한 표상(表象), '鷹準(응준)'下‘매’상징으로 한 또다른 세력 백제의 주류 형성 추측2018.08.28@ 김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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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27>마한의 용맹한 표상(表象), '鷹準(응준)'中외세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이고 강건한 전통 유지2018.08.14@ 박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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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26>마한의 용맹한 표상(表象), '鷹準(응준)'上한반도에서 희귀한 전실 앞 제사 공간 주목201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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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25>마한의 ‘후장(厚葬)’ 풍습과 ‘복장(複葬)’-초분(草墳), 옹관묘下유명한 문화 인류학자인 말리노브스키(Malinovsky)는 유족들이 死者에 대해서 품는 정서 반응에는 사자에 대한 애정과 시체에 대한 공포의 모순된 정서가 병존하고 있다고 말한 바2018.07.17@ 박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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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24>마한의 ‘후장(厚葬)’ 풍습과 ‘복장(複葬)’ -초분(草墳), 옹관묘上장례시 소나 말 '순장' 대용으로 이용 사실은 명백
부여에서는 여름에 시체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얼음을 사용했다는
기록을 볼 때, 사람이 죽으면 바로
매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시체는 모두
가매장하되2018.07.03@ -
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23>마한의 '복장(複葬)' 풍습과 '정촌 고분'의 파리 번데기 껍질정촌 고분 1호 주인공 일정기간 장례 절차 거쳐 안치 설명
복장 곧 빈장이 마한 지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기록에서는
확인되지 않지만 정촌 고분의 파리
번데기 껍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정촌 고분의 유물들이
마한의 사회상을 살피는데 중요한2018.06.19@ -
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22>'다시들' 정치제의 실체를 밝힌 '두힐사' 銘文과 '불미국(不彌國)'영산강 마주보며 '내비리국’·‘불미국' 마한 연맹체 양립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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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21>마한 남부 연맹의 ‘타임캡슐’,‘다시들’ 복암리 고분군下평지에 위치 농업 생산력 발달 발전 동력 확보
정촌 고분에 추가장이 도입될 무렵
형성되기 시작한 복암리 3호분의
묘제 및 부장품들을 통해 다시들
연맹체 세력 내부의 주도권이
바꾸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부장품 규모만2018.05.22@ -
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20>마한 남부 연맹의 ‘타임캡슐’,‘다시들’ 복암리 고분군中옹관묘제 오래 지속 독자세력 정치체 유지 증거
복암리 3호분에서 4세기 후반
또는, 5세기말로 소멸 시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던 옹관묘가
6세기 중엽까지 사용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어 마한 세력이 그때까지
존속되었음을 입증해주었다.2018.05.08@ -
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19>마한 남부 연맹의 '타임캡슐''다시들' 복암리 고분군上복암리 일대 강고한 독자적 정치체 형성 세력 확인
3호분을 포함하여
나머지 고분들의 거대한 봉분
규모와 무려 26기나 되는
3m 넘는 대형 옹관 및 금동신발,
장식대도·은제관식 등 출토
유물들은 이 고분 피장자가2018.04.24@ -
박해현의 다시 쓰는 전라도 고대사Ⅱ <18>마한 남부 연맹과 영산강식 토기下- 6세기초까지 거대 무덤 성행 독자적 정치체 존재 증거영산강식 토기라고 알려져 있는토기들이 주로 영산강 본류와고막천유역 등 지류, 북으로는고창, 영광 지역의 와탄천 유역,함평천 유역, 해남, 장흥, 심지어고흥 일대까지 분포하고 있어이2018.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