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고 여기는 이유는 여럿 있다. 지난 세월 소외와 차별에서 벗어나 균형발전과 미래도약을 꿈꾸기 시작한 도시 광주를 둘러싼 여러 정황들이 변한 것도 사실이다. 촛불혁명의 동력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친호남 정책이 뒷배라면, 민선 7기 새 리더들의 넘쳐나는 열정이 또 다른 추동력이 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신성장동력도 든든하다. 광주의 문화는 미래세대의 먹거리다. 지역균형발전과 국민대통합이라는 담론 아래 호남의 낙후와 소외는 이제 벗어던져야 할 유물이 되고 있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는 도시가 바로 광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미래를 낙관만 할 수 없는 건 또 어떤 이유인가. 광주에서는 행정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개성 강한 광주의 풍토를 꼬집는 말이다. 다분히 부정적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행정가들의 입담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조목조목 따져보면 그리 틀린 얘기도 아니다. 광주도시철도 2호선 건설, 어등산 관광단지 조성, 군 공항 이전, 민간공원 개발, 옛 전남도청 복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활성화, 무등산 정상 군부대 이전 등등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 게 그 방증이다. 타 지역과 비교하면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 많은 현안들을 풀어가는 데 있어 어느 것 하나 명쾌한 게 없고, 길게는 10년 이상 표류해온 사업도 있다.
오래전 광주는 대동세상이었다. 도청 앞에 모인 수많은 시민들이 각자의 의견을 토해내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론이 도출되면 모두들 그에 따랐다. 시민들을 아우르는 지도부가 있었고 모두가 하나되는 구심력이 작용했다. 민주와 인권, 평화라는 광주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 이유다. 공동체 안에서 의견은 다양하지만 가야할 방향은 분명한 도시.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광주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바로 광주의 현주소다.
그 이유를 꼽으라면 많다. 비단 어느 한 요인만도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故 홍남순 변호사나 故 조비오신부처럼 지역의 큰 어른이 안계신다는 점을 우선해서 꼽는다. 당시에는 홍 변호사나 조 신부께서 한 말씀 하시면 모두들 따르는 문화였다. 시대적 상황이 그래서이기도 했지만 어른들 스스로가 민주적 절차와 합리적 결정을 존중했고 시민들을 아우르는 조정력 또한 뛰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 다른 이유로, 말하지 않는 다수의 시민보다 목소리 큰 소수의 집단이 앞서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광주가 유독 강하다는데, 지역의 현안이 생길 때마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침묵해 버리고 거기엔 큰 목소리만 자리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정당성을 갖느냐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늘 되풀이되는, 그래서 현안 해결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그런 풍토를 지적하는 것이다. 지금 광주가 그렇다.
일부에서는 역대 단체장들의 우유부단함과 결정장애를 꼽기도 하고, 무기력한 호남정치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도시철도 2호선의 경우만 하더라도 단체장이 바뀔때마다 재검토-여론수렴-재결정이라는 쳇바퀴를 돌아왔다. 어느 누구라도 건설이면 건설, 백지화면 백지화, 딱 부러지게 결정하고 밀어붙였더라면 지난 16년의 소모적 논쟁은 없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봐온 시민들에게는 '단체장 결정장애'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생겼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특정 단체장의 지지도가 유독 낮게 나온데는 다 이유가 있다.
호남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지역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오만과 독선의 그늘이 보이는 민주당이나 지방선거 이후 도대체 존재감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야당에게서 정치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늘 하는 얘기지만, 지역의 중진 국회의원들은 광주의 현장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언론, 시민사회, 지방의회 등 각 직능별 한계를 이유로 들기도 하지만 어느 특정 분야가 아니라 보다 복합적인 요인들이 지금의 광주를 작동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광주의 기회를 살리는 데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점에 있다.
지금 광주에서 가장 첨예한 현안을 꼽으라면 도시철도 2호선 건설과 광주형일자리를 기반으로 한 현대차 완성차공장 투자유치다. 각 단체별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갈등구조 또한 복잡하다. 후폭풍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논란과 갈등으로 점철돼 온 도시철도 2호선은 그나마 시민참여형 숙의조사가 진행되는 만큼 절차와 결과를 주목하면 된다. 관건은 광주형일자리를 기반으로 한 현대차 투자인데, 자칫 좌초할 우려가 크고 그 부작용도 적지않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대로 광주형일자리나 현대차 완성차공장이 무산된다면 앞으로 과연 어느 기업이 광주에 투자하려 들겠느냐". 지역 경제인의 자조섞인 한마디가 귓가에 오래 머문다.광주시와 노동계 사이의 뿌리깊은 불신 속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미래세대의 아픔이 투영되기도 한다. 광주가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위기는 기회이고, 기회를 놓치면 또 다른 위기가 온다고들 한다. 지금 광주는 기회이자 위기이다.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 · [무등의 시각] 지구의 경고, 언제까지 무시할 건가
- · [무등의 시각] 그토록 지키고 싶던 권진규의 영원
- · [무등의 시각] "주택담보대출비율 80%로 완화했지만 누가 사"
- · [무등의시각] 바보야! 문제는 설득논리야!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