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우 정치부 차장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지면 어긋나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끝까지 채워본들 옷을 제대로 입을 길이 없다. 잘못 채워진 채로 몸에 맞지 않는 불편함을 감수할 게 아니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풀고 처음부터 채우는 수 밖에 없다.
반값 연봉 제시→현대차 참여→노동계 배제→노동계 반발→노사민정 대화 거부→협상안 수정→노동계 대화 복귀→현대차 난색→협상 난항….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가 바로 이런 잘못 채워진 첫 단추와 닮아 있다.
광주시가 추진 중인 대기업 반값 연봉 수준의 광주형 일자리는 우리 노사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올 혁신적인 정책이다.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고임금·저생산성 구조'로 위기에 처한 한국 자동차산업과 제조업에 활로를 열어 줄 일자리 모델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기대하는 바가 크고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광주시와 현대차의 완성차 공장 설립 투자협상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와 민주노총의 반발이 거센데다 적정임금, 근로시간 등 핵심 쟁점 역시 이견으로 한발 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일각에서는 노사상생 최초 모델로 시작된 논의가 정치적인 논리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완성차 공장의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을 따지기보다 '연봉 얼마짜리 일자리 몇 개를 만드느냐'에 매몰돼 논의가 겉돌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는 최근 열린 광주시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여러 의원들이 제기했던 부분이다.
현대차도 할 말이 있다. 광주시가 지역 노동계의 입김에 휘둘려 협상 조건이 달라진 것에 대한 불만이다. '고임금·저생산성 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광주형 일자리 참여를 결정했는데 광주시와 지역 노동계의 협상조건이 당초와 많이 달라져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광주시는 현대차와 처음으로 완성차 공장 설립 논의를 할 당시 '총 연봉 3천만원 수준'의 협상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지역노동계가 반발하면서 노사민정 불참을 선언하자 원탁회의와 투자유치추진단 회의를 거쳐 '주 40시간 초임 평균 3천500만원 수준'으로 협상안이 수정됐다. 임금·단체협상도 5년 유예에서 매년 논의로 변경됐다.
광주시가 수정된 협상안으로 지역노동계의 참여는 이끌어 냈지만 현대차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면서 지금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시가 예산 확보에 조급한 나머지 협상을 서두르고 지역 노동계와 현대차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비판도 새겨 들여야 할 부분이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광주시가 '10월 골든타임'이니, '11월 담판'이니 하며 날짜를 못 박으며 서두르는 바람에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광주형 일자리가 애초부터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는 점에는 광주시도 인정한다. 현대차와의 협상을 이끌고 있는 이병훈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은 취임 초 "업무추진을 서두르다 보니 미숙한 면이 있었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광주형 일자리가 좌초 위기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수익이 나야 투자를 할 수 있다'는 현대차의 주장과 노동계의 우려에 공감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광주형 일자리는 포기할 수 없다. 광주는 물론, 대한민국 청년들의 일자리 명운이 걸려있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국가적 정책이다. 광주시, 노동계, 현대차가 머리를 맞대고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현재의 일자리 조건과 환경에 만족하며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고 변화를 거부하면 '끓는 물속의 개구리 이야기'(boiled frog story)처럼 위기에 무뎌지다가 결국 공멸하고 말 것"이라는 이용섭 시장의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길 바라며 광주시와 현대차, 노동계에 다시 한 번 대승적인 결단을 촉구한다.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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