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국 문화체육부 차장대우
“한기자, 세상에 고독사는 없는 거야.”
북부경찰서를 출입하던 7년 전 수습기자 시절에 들었던 말이다.
내가 던진 질문에 대답하던 한 형사는 홀로 살던 노인의 죽음을 고독사라고 표현한 것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고독사는 일반적으로 독거노인들의 죽음을 가리킨다. 최근에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발생한 젊은 청년들의 자살에도 쓰이고 있다. 이처럼 고독사라는 표현은 어렵지 않게 사용된다.
그럼에도 형사는 꿋꿋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고독하게 혼자 살다가 죽어서 고독사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사실 고독사는 사인이 아니라고.
혼자 살다 떠난 이들의 죽음도 다른 사망 사례와 같이 다뤄야 한다는 의미다. 쇼크사, 실족사, 화재사, 감전사처럼 병사나 사고사, 타살 등에 초점을 두고 사인을 결정해야 한다.
참 당연한 주장이다. 외로워서 죽었다는 것은 납득해서는 안 된다. 홀로 살다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를 더 하지 않거나 사망 원인을 결정하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잘못 내린 판단에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일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만일 고독사로 위장한 타살이라면, 알려지지 않은 전염병이라면 피해는 더 커질 것이 뻔하다. 그래서 ‘고독하게 살았으니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접근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때문에 고독사라는 표현은 조심히 쓰는 것이 맞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취해서 사람을 때렸다’ ‘취해서 음주운전을 했다’ ‘심신미약 상태라서 목숨을 해쳤다’는 등도 마땅한 이유로 보기 어렵다. 술로 인한 폭행은 핑계에 불과하다. ‘다툼이 일어나서’ ‘빚을 갚지 않아서’ ‘복수심에’ 등이 진짜 이유다. 취해서 운전대를 잡았다는 음주운전자의 말도 ‘경찰에 걸리지 않을 자신이 생겨서’ ‘무사히 귀가할 자신이 있어서’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을 해서’ 등이 진심일 것이다.
이와 함께 ‘술 먹고 죽었다’는 말도 다를 바가 없다. 술을 먹은 것은 앞서 일어난 행동이고, 직접적인 사망 이유로 단정 지으면 안 된다. 취한 상태지만 타인으로 인해, 사고로 인해, 질병으로 인해 죽을 수 있는 일이다. 즉, 사정과 사실은 다른 거다.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직접적인 이유로 봐서는 위험하다. 술 취한 것이 면죄부가 된다면 이를 악용하는 이들은 분명 늘어날 것이다.
이 때문에 공권력을 가진 자라면 신중해야 한다. 특히 사망사건 처리는 더욱 그렇다. 폭행사건과 달리 죽은 자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없다. 적어도 세상을 떠난 이에게, 남겨진 이들에게 억울해 슬퍼하는 일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새해를 맞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해 썼다. 조사 하나에, 받침 하나에 문장의 의미와 표현이 달라질 수 있음을 회고하며 기록했다. 충분조건을 갖추지 않은 이유를 진짜 이유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한번쯤 돌이켜보고 싶었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의도는 아니었지만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글을 남기는 실수도 있다.
내 주장에 예외가 있음을 알고 있다. 빵을 훔친 굶주린 어린 거지의 이야기처럼 극소수의 심신미약 질환을 가진 장애인 등에게는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부당한 자들 탓에 피해를 본 정당한 자들을 위해 쓴 글이니 오해 없길 바란다.
내가 펜을 잡게 된 이유를 다시 기억하자. 섣부른 판단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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