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차장대우
최근 한 동료에게서 질책을 들었다. 과거에 쓴 기사가 평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한화 김성훈 선수가 광주 한 병원 옥상에서 추락해 운명을 달리했을 때 쓴 기사였다.
상사의 지시로 짧은 사건 기사를 작성하면서 필자는 “술이 많이 된 것으로 보인다”던 경찰 관계자와의 취재를 바탕으로 ‘경찰은 김성훈이 술을 마시고 9층 옥상에서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썼다.
경찰이 이같은 판단을 내놓은 데에는 CCTV에 찍힌 그의 비틀거리는 모습, 그리고 술에 취한 모습을 본 간호사의 증언이 뒷받침됐다. 더 행적을 확인하고자 했으나 유족들의 만류가 있었다고 했고 나 역시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 경찰의 일은 범죄 연관성 여부만 확인하면 그만이다.
다른 기자에게서도 들어본 적 있다. ‘술’이야기를 쓴 건 내가 처음이었던 모양이고, 고인에게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KIA에서 나를 좋지 않게 본다는 것이다.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기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던 차에 서두에 언급한 동료가 칼럼을 통해 ‘단순히 술 먹고 죽었다고 단정 지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만감이 교차할 수 밖에 없다. 스포츠전문매체 기자도 아닌 터라 평소 일반 사망 사건과 동일한 시각으로 접근해 기사를 작성했다.
동료와 KIA 구단의 섭섭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일반인과 달리 유명인의 뉴스는 본인이 원치 않는 사실이 영원히 기록된다. 그러나 원치 않는 사실이라고 해서 출처 자체를 막연히 의심하는 건 지혜롭지 못하다.
기자가 전하는 것은 결코 왜(WHY)가 아니다. 사건이 어떻게(HOW) 발생했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독자들과 공유해 판단을 돕는다. 왜(WHY)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물음이다. 부단한 노고 끝에 기사를 작성해 나름의 ‘왜’를 제시해도 물음은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쓰는 모든 기사는 그래서 미완성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따금씩 우리는 마음이 가는 곳에 따라 이 사실을 부인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부정이 드러나면 이를 보도한 기자와 매체가 공격을 받곤 한다. 그러나 사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동료의 고민도 이해는 간다. 야구 선수들과의 오랜 기간 교류를 해 온 그가 느끼는 감정은 매일 죽음을 접하는 사건기자인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 ‘술을 먹고’라는 문구가 가져올 부정적인 효과를 우려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을 전달한 이의 잘못이 돼서는 안된다. 타인의 비극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다.
어떻게(HOW)와 왜(WHY)는 구분하길 권한다. ‘술을 먹고’는 결국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나’를 설명해주는 부연적인 문구다. 이는 고독사가 ‘고독해서 죽었다’(WHY)는 뜻이 아니라 ‘돌봄 없이 고독하게 죽어갔다’(HOW)는 것과 같다.
기자는 판단하는 이가 아니다.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기고, 독자들의 판단을 도울 수 있는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기사가 끼칠 영향을 쓰기도 전에 고려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의도가 반영된 기사가 아닐까. 중첩된 사실 속에서 진실이 드러난다지만 그 과정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그렇게 드러난 진실을 납득하기까지는 다시 긴 시간이 걸린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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