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입니다." 전두환을 대면하게 된다면 꼭 하고 싶은 한마디다.
대한민국 현대 민주사 자체를 부정하고 폄훼하는 이에게 은혜나 도움을 받을 때 건네던 화답을 하다니 가당치도 않다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다. 넌센스 같은 상황이지만 그에게 마음을 전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79년 총과 군화발로 일으킨 쿠테타, 이듬해 5월 항쟁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목숨들. 전두환이 권력 장악의 도구로 삼았던 그해 5월 민중들의 외침은 훗날 대한민국에 진전된 민주화의 원동력이 됐다.
2017년 4월 전두환이 내놓은 회고록도 마찬가지다. 진실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그간 부단히도 애썼던 역사 왜곡 '끝판왕'의 결과물인 그의 회고록은 도리어 뒤늦게나마 역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37년 만에 다시 펜으로나마 일으켜 보려했던 역사 쿠데타의 계획은 그 날의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가는 수많은 증거와 증인을 수면 위로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를 광주법정 피고인석에 세우기까지 했다.
전두환은 진실이 두려웠다.
실제로 전두환은 1985년 황석영 작가와 이재의, 전용호씨 등이 죽음을 각오하고 세상에 내놓은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32년 만에 개정판을 내놓자 이를 왜곡하기 위해 회고록을 준비했다. 실제로 두 책의 목차는 같다.
이를 두고 전두환 회고록 관련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김정호 변호사는 '악의 성실함'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선후배 법조인들과 함께 이 재판에 뛰어든 이유도 악의 성실함을 뛰어 넘는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객관적 자료의 입증을 통해 판결로, 기록으로 남겨야한다는 생각에서다.
전두환이 회고록을 출간한 최초의 의도는 매우 사악했으나 결과론적으로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다.
지금 광주에서는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를 시작으로 전두환의 엄벌을 촉구하는 각계각층의 릴레이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고인이 된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전두환을 엄중히 처벌해 달라는 목소리가 아니다. 광주와 전남의 역사를,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고 있는 이에 대한 엄벌을 내려달라는 당부다.
갈팡질팡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혹'. 지난 세월 수많은 역경과 폄훼 속에서도 오직 진실을 향한 한 길만 걸어왔던 5·18민주화운동이 의미있는 40주년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이번 재판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넘어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라는 명제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사회부 차장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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