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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의 시각] "당신, 그러면 쓰겄는가"

@서충섭 입력 2020.12.10. 15:41 수정 2020.12.10. 16:50

"이 사람아. 그 사람들은 일생의 한(恨)을 풀려고 나온 것인데, 그것마저도 막으면 살지 말라는 거 아닌가."

뜻밖의 대답이었다. 전두환이 광주의 법원을 다녀간 다음날, 관할 경찰서로 가 전날 일로 수사가 진행되는 건이 있는지 물었다. 무리도 아니다. 전날 전두환이 타고 왔던 차량은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쓰고 쫓기듯 광주의 법원을 벗어났다. '피고인 전두환'은 이날 유죄 판결을 받고 '죄인 전두환'이 됐으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연희동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본 오월 어머니들은 가슴을 치며 도로 한가운데 주저앉아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계란투척은 경범죄고, 어머니들 행동은 불법도로점유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현행법 위반 소지를 들여다보고 있을지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눈빛 만으로도 웬만한 조폭들을 단숨에 제압한다는, '조폭 저승사자'라고 불렸던 김태철 형사과장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피해자로부터 피해 사실이 접수되지 않았다'라는 원론적인 대답 대신, 지인의 부고를 들을 때 마냥 미간을 찡그리며 말한 것이다. "그러면 쓰겄는가" 맞다. 그러면 안되는 것은 누구일까. 경찰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말한 그도 전날 광주 법원 현장에 투입된 경비 담당자 중 한명이었다.

그 말에 다시 전날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뭔 짓거리여 진짜 날마다 에휴…"

판결을 받은 '죄인 전두환'이 법원을 떠난 직후 누군가의 말이 귀에 들렸다. 누군지는 모르나 전두환 재판마다 반복되는 이 상황에 푸념을 한 것일 테다. 첫번째 재판에서는 분노한 시민들이 전두환에 거의 육박하는 일까지 있었다. 100m도 안되는 거리를 탈출하는 데 30분이나 걸린 그날의 교훈 탓인지 두번째 재판부터는 펜스가, 이번 재판에 이르러서는 거의 진지구축에 가까운 방어선이 설치됐다. 한 품은 이들은 그 틈바구니를 끊임 없이 비집고 손을 내뻗었고, 소리질렀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

재판 결과에 분을 삭이던 이들이 차 한대를 발견했다. 47수8559. "전두환 차다" 전두환은 타지 않았으나 분노한 이들은 차 바퀴를 부여잡고, 드러 누웠다. "반성 안할거면, 이 차라도 압류해. 압류하라고" 부질없기에, 그래서 더 처절하게 들렸다.

상황이 종료됐지만 어머니들은 도로 위에 덩그러니 앉아 넋을 빼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아들을 잃은 이, 오빠를 잃은 이, 남편이 고문을 당한 이였다. 제발 전두환 직접 한번 보게 해달라며 가슴을 치고 땅을 쳤다. 이 또한 부질 없지만, 탓하는 것도 부질없으리라.

잘못을 분간한 것은 법률가였고, 알리는 것은 기자였으며 안전을 지킨 것은 경찰이었다. 그럼 아픈 이를 위로하는 역할은 누구 몫일까.

어쩌면 그 책임은 함께 광주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 부여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마다의 방식이 있기를 바라본다. 서충섭 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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