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의 창

무등일보·아시아문화원 공동기획 아시아문화의 창 <5>세계 최고령 타투이스트를 찾아서

입력 2018.06.11. 00:00
100세 필리핀 황옷 할머니 현재 유일 생존 전통 문신사
황옷 할머니는 10대 후반부터
문신하는 법을 배워 지금까지
한평생 문신 작업을 해오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몇몇 학자와
미디어에 의해 황옷 할머니의
존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문신을 시술하고 있는 황옷 오가이 할머니

필리핀 루손섬 북부 코르디예라 지역에 분포하는 여러 산악 소수민족들은 오래전부터 남녀 모두 문신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곳에서 문신은 정치적·사회적 표지, 악귀나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주술 행위, 용맹함과 승리의 상징, 통과의례와 신체장식 등 다양한 목적과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이푸가오(Ifugao), 본똑(Bontoc), 깔링가(Kalinga), 아브라(Abra), 벵겟(Benguet) 등 코르디예라 지역 거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관습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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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의 문신은 머리사냥(head-hunting) 전통 등을 문제시한 식민정부와 선교사에 의해 '야만'적이고 '비문명'적인 것으로 치부되었고, 점차 억압 받고 금지되면서 사라졌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던 코르디예라 문신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한 할머니 덕분이다.

1917년에 태어나 올해로 만 100세가 되었다고 알려진 깔링가주 부스칼란(Buscalan) 마을의 황옷 오가이(Whang-od Oggay) 할머니는 현재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전통 문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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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옷 할머니는 10대 후반부터 문신하는 법을 배워 지금까지 한평생 문신 작업을 해오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몇몇 학자와 미디어에 의해 황옷 할머니의 존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필리핀은 물론 전 세계에서 할머니에게 깔링가 전통 문신을 받기 위해 험준한 산골 마을을 방문하고 있다.

코르디예라 지역의 전통 문신은 각 종족과 부족별로 그 모양과 상징하는 의미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주로 해, 달, 산, 바위, 강, 들, 번개와 같은 자연과 매, 뱀, 지네, 전갈, 도마뱀과 같은 동물 및 곤충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여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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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문양을 독립적으로 새기기도 하지만 대개 여러 무늬를 층층이 길게 새겨 가슴, 어깨, 팔 등을 뒤덮는 것이 특징이다. 부스칼란 마을에서 인기 있는 문양은 매와 뱀 비늘인데, 하늘을 나는 매는 '자유'와 '의지'를, 허물을 벗는 뱀은 '부활'과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물론 현재 이 문양들은 본래 지녔던 사회적, 문화적 표식으로서 기능한다기보다 방문자의 바람과 목적에 맞게 변용되어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필수 코스처럼 찾는 것은 바로 황옷 할머니의 서명과도 같은 삼점(三點, 3 dots) 문신이다. 할머니의 전체 이름 '황옷 마리아 오가이'를 나타낸다고 알려진 이 3개의 점은 형태가 매우 단순하고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황옷 할머니의 서명을 몸에 새긴다.

코르디예라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문신하는 기술에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일명 '핸드태핑(hand-tapping)'이라고 부르는 방식인데, 두 개의 막대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하나의 막대로 시트러스 가시가 장착되어 있는 다른 막대를 내리쳐 피부에 가시를 찔러 넣는 원리이다. 즉, 바늘(가시)이 달린 막대를 쥔 손은 문신을 새길 위치를 잡고, 두드림 막대를 쥔 손으로는 손가락의 반동이나 손목의 회전을 이용해서 타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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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바늘의 수평 움직임과 수직 움직임을 양손이 각각 나누어 조절하는 것으로 인도네시아, 폴리네시아 등 태평양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코르디예라 지역 일대에서는 문신을 '바톡(batok)', '파틱(fatek)' 등으로 일컫는데, 바로 문신의 작업 방식인 '치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황옷 할머니가 살고 있는 부스칼란은 우리가 흔히 '오지'라고 부를 수 있는 곳, 다시 말해 교통과 통신 등에 있어 현대 기술 발달의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다.

여행자가 부스칼란 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매우 길고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하는데, 장시간에 걸쳐 버스와 지프니(미국 군용 지프를 개조해서 만든 대중교통수단)를 타는 것도 모자라 마지막 구간은 오로지 두 다리에 의지해 한 시간 가량 가파른 산길을 걸어야 마을에 도달하게 된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휴대전화 전파는 잡히지 않는, 해가 지고나면 어둠 속에 적막만이 감도는 아주 외딴 곳이다. 그러나 이역만리에서 필리핀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수고와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듯 사람들이 몰려오자 지금은 황옷 할머니뿐만 아니라 조카 손녀이자 전수자인 그레이스 팔리카스(Grace Palicas), 엘리양 위건(Elyang Wigan)을 비롯하여 마을의 여러 소녀들이 전통 문신 작업을 하고 있다.

할머니가 점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기술과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신을 받기 위해 마을을 방문하는 외부인이 급증하자 생겨난 '관광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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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조용한 산골 마을이 세계적인 문신 '순례지'가 되면서 마을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급속한 변화가 때로는 또 다른 갈등과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거의 사라졌던 전통 문화가 다시 살아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모습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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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환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

아시아문화연구소는 아시아 문화의 가치를 탐구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및 학술교류 활동을 하고 있는데, 특히 주변화되고 소멸되어 가고 있는 아시아 각 지역의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라이브러리파크에서 진행 중인 <아시아의 타투> 기획전은 아시아문화연구소가 아시아 문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조사·연구하고 아카이브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그 일부를 대중들에게 전시로 선보이는 자리이다. 필리핀 부스칼란 마을에서 문신이 행해지는 모습도 사진과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특히 황옷 오가이 할머니가 직접 사용하던 도구도 전시되어 있어 이해도와 현장감을 높여주고 있다. 아시아문화연구소는 이외에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아시아인의 삶과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가공하여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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