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의 창

무등일보·아시아문화원 공동기획 아시아문화의 창 <9>키르기스 민족의 영웅이자 백과사전 '마나스'

입력 2018.09.10. 00:00 최민석 기자
영웅의 이름 넘어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민족의 자부심
적을 위해 달리는 마나스. 키르기스스탄 국립미술관 제공

광주를 방문하여 우치공원 호랑이를 만난 마나스 전문가 아셀 이사에바 박사는 뜬금없이 마나스 이야기를 꺼내든다. 호랑이를 보면 벵골 호랑이와 시베리아(아무르 또는 백두산 호랑이) 호랑이로 구분하여 인식하고 설명을 시작하는 우리와 달리, 아셀 이사에바 박사는 호랑이에 관한 지식을 키르기스 민족의 영웅이자, 서사시의 제목인 마나스를 통해 설명한다. 키르기스 민족에게 호랑이는 마나스를 지키며, 마나스를 인도하는 영험한 존재이다. 비록 현대 키르기스스탄의 자연에서 호랑이를 볼 수는 없으나, 키르기스 역사와 문화 속에서 호랑이가 어떤 존재로 여겨져 왔는지 대부분의 키르기스인들이 알고 있다.

우리에게 마나스는 키르기스 민족을 영도하여 중앙아시아에 일대에서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던 흑거란(서요, 대거란, 카라 키타이)과 싸우면서 키르기스 민족에게 자유와 행복을 선사했던 영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나스와 주변 민족과의 싸움이 쉽게 끝나지 못하자, 그의 아들 세메테이와 손자 세이테크의 대에 이르기까지 그 싸움이 계속되었다. 마나스, 세메테이, 세이테크 삼대에 이르는 키르기스 영웅들의 이야기를 엮어 구전으로 전승한 것#그림1중앙#

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웅서사시 '마나스'이다.

마나스 삼대에 관한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을 9세기에서 13세기 사이로 추정하지만, 명확하게 단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역사적 사실로 명확히 인정되기 위해 필요한 사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웅서사시 '마나스'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전승되는 설화쯤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대부분의 신화와 영웅서사시는 세대를 이어 반드시 전승되어야하는 역사적 시대적 진실(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사실과는 다름)을 포함하고 있다. 비록 서사시 속 중요한 요소들이 후대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변형을 통해 다양한 버전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해리포터를 능가하는 공상적 장면이 나타나지만 결국 서사시 속 이야기를 통해 후대에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진실일 수 있다. 우리가 서사시 마나스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바로 이러한 맥락을 파악하데 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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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부분의 키르기스 민족은 남쪽으로는 파미르 고원 북부, 북쪽으로는 추강, 서쪽으로는 페르가나 지역, 동쪽으로는 이식쿨 호 동부 지역에 이르는 현대 키르기스스탄 영토 안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7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키르기스 민족은 시베리아의 예니세이 강 유역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문헌에는 견곤(堅昆) 혹은 격곤으로 알려져 있던 키르기스 민족은 당시 몽골고원의 지배자였던 위구르 민족을 공격하여, 위구르 민족이 현대 중국의 서부지역인 신장지역에 머무르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 키르기스 민족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발해와 국경을 맞대거나 발해와 직접적인 교류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키르기스 민족에게 영웅서사시 '마나스'는 역사인 동시에 백과사전이다. 흑거란과 칼묵 등 다양한 민족들과의 싸움에서 피해를 입고 살던 땅을 떠나 유랑 후 평화를 되찾은 키르기스의 역사로 이해된다. 또 초원의 역사와 사회생활, 전통과 관습, 신앙과 가치관, 동물, 식물, 자연환경, 우주에 관한 지식 그리고 인간관계를 키르기스의 민족지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키르기스의 백과사전이라고도 이해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마나스는 가장 좋고 위대하며 훌륭한 것을 형용할 때 사용된다. 수도 비슈켁의 공항의 이름도 마나스, 가장 좋은 기념품의 이름에도 마나스, 한때 존재했던 미군 공군기지의 이름도 마나스이다. 마나스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으로 이해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마나스는 영웅서사시의 제목과 영웅의 이름을 넘어,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이름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키르기스 민족에게 마나스는 자부심이다.

서사시로서 '마나스'가 이민족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제국의 침략 이후 러시아인들이 서사시 '마나스'를 채록하면서부터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러시아인들은 '마나스'를 채록하기 시작하였는데, 1970년대 말 당시 채록된 '마나스' 이본은 모두 65종에 달했다. 다양한 '마나스'판본 중 가장 긴 판본은 오십만행에 이르는데, 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보다 수십배 길고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보다 더 길다고 알려져 있다.

키르기스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서사시 '마나스'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문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등재신청 국가는 키르기스스탄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비록 키르기스스탄이 서사시 '마나스'를 자민족 최고의 유산이라 자랑하면서, 1995년에 서사시 '마나스' 1천년을 기념하여 국가적인 행사를 진행하였지만 이웃나라 중국에서 자국의 소수민족 유산으로 등재를 한 것이었다. 이후 키르기스스탄의 노력으로 2013년에 '키르기스스탄의 3부작 서사시, 마나스·세메테이·세이테크'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으나, 중국과 키르기스스탄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은 아리랑 문제를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사시 '마나스'는 중앙아시아 다른 서사시들과 달리 음악반주 없이 '마나스치'라 불리는 구연자가 연행한다. 키르기스인 문학가 칭기스 아이트마토프는 마나스치 사야크바이 카랄라에프를 인터뷰하고 그의 판본을 채록하면서 마나스 3부작 서사시를 "키르기스인과 동의어이며, 그들의 삶을 담은 백과사전과 같다"라고 강조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개최되는 대한민국 최초의 마나스 전시와 마나스치의 연행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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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문위원

전봉수 인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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