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의 창

무등일보·아시아문화원 공동기획 아시아문화의 창 <10>인도네시아 술라웨시의 전통 건축 통코난

입력 2018.10.01. 00:00 최민석 기자
하늘 향해 치솟은 지붕 가진 토라자 족 이색 건축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토라자 족의 실생활이 이루어지는 주거 통코난.

술라웨시(Sulawesi)는 인도네시아를 이루는 1만8천108개의 섬 중 하나이며, 과거 셀레베스(Celebes)라 불리기도 했다. 이 섬은 남한의 1.7배에 달하는 면적을 자랑하며, 중앙부의 고원을 둘러싼 네 개의 거대한 반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지형 조건은 각 지역에 자리 잡은 집단 사이의 이동과 교류를 막는 장벽이 되었다. 이 때문에 적어도 4개 이상의 독자적 기원과 문화를 갖는 집단이 내부에 형성되었다. 그 중 술라웨시 섬 중앙부 고원지대에 자리 잡은 집단이 바로 '토라자' 족이다.

토라자 족이 정착한 술라웨시 내륙은 평균 해발고도가 900미터 가량인 고원 지대이다. 여기에 깊은 계곡이나 산악 지형, 침식 작용이 강한 하천 등이 발달해 접근성이 좋지 않다. 그런 가운데 일단의 생활 형태와 언어, 주거 양식 등을 공유하는 에스닉 그룹(ethnic group, 언어와 역사 등 핵심 문화 요소를 공유하는 집단)이 점차 형성되었고, 부기스(Bugis)와 같은 주변 민족은 이들을 토라자(Toraja, 고산족)라 불렀다.

이들은 애니미즘(정령신앙)에 기반한 신앙 형태와 조상 숭배 의례, 그리고 독자적 건축 양식을 발달시켰다. 전자는 죽은 이에 대한 화려한 장례 의식과 조상이 후손의 곁에 영원히 머물며 길흉을 주관한다는 인식에 기반한, 알룩 토 돌로(Aluk To Dolo)라는 종교 현상을 낳았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가진 집단의 주거 양식으로, 통코난(Tongkonan)이라는 대단히 이색적인 건축이 형성되었다.

토라자 족의 주거는 실생활이 이루어지는 통코난과 창고로 쓰이는 아랑(Alang)으로 되어 있는데, 양자는 건축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일단 이 건축물에서 외부인의 시선이 우선 멈추게 되는 지점은 그 독특한 지붕이다. 이는 '배'를 형상화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현지인들의 지붕에 대한 언급도 같은 내용의 전승을 담고 있다. 그것은 '배'를 중시하던 해양 민족이 다른 민족에 의해 밀려나, 술라웨시섬의 고지대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타고 온 배가 정착 초기 집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토라자 건축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는 실제 전승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해석한 사람들의 견해가 다시 주입된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대외적 활동이 많고, 다양한 역사적 지식을 접합 기회가 많은 남성들에 있어 이는 하나의 고정된 '역사성'을 획득한 내러티브로 고착되어 있다. 다만, 현지에서 만난 여성들에게는 같은 이야기가 "처음 듣는 이야기"로 취급받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예전부터 그랬다"라는 다소 식상하지만, 상식적이기도 한 그들의 견해가 이어진다.

토라자 인들은 외부인의 "왜"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그들의 섣부른 해석을 일부 수용하여 설명을 시도한 듯하다. 한편으로 이것은 '당신이 원하는대로,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줄께요'라는 대응 태도일 수 있다. 인류학적 현지조사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매우 다양한 층위로 발생하곤 했다. 그리고 이것은 대표적인 여류 인류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의 연구가 오늘날 공격 받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아울러 여기에는 현지 언어 구사자와 이를 매개하는 통역자, 그리고 조사자 사이의 '언어적 이해 격차'도 작용한다.

현지인에게 있어 조사자는 외부인이지만, 학문적 권위를 갖춘 관찰자이자 해석자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구체화된 질문을 그대로 받아들여 내재화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독립된 소집단, 혹은 개인 사이에 존재하던 '해석'의 차이가 좁혀지기 시작한다. 아울러 '교육'이나 '텍스트'의 권위가 개입하게 될 경우, 이에 뒤따르는 과정은 일종의 평준화로 치닫는다. 토라자 건축에 대한 전승에서 이는 '해상 세력의 이주와 배'라는 소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통코난과 아랑의 지붕은 외적으로 관찰되는 모양의 유사성에서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전승에서도 '배'를 형상화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농경민이었고, 술라웨시에 정착한 이후에도 벼를 중심으로 하는 농경문화를 꽃피운, 술라웨시 섬 중남부 지역의 토라자 족과 '배'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울러 이런 양식의 지붕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바탁(Batak) 건축, 일본의 집 모양 하니와나 이케가미소네 유적의 고전(古殿), 등에서도 확인된다. 즉, 이를 이 지역만의 독자적인 양식이라 볼 수는 없다.

토라자 건축의 독특한 지붕은 1900년대 초반 이래 이 지역에 진출한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이른 시기부터 서구에 소개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지붕을 건축 분야에서는 말안장형 지붕(Saddle roof)이라 부른다. 토라자 지역의 경우는 바탁을 비롯한 다른 사례와는 달리 지붕마루가 이루는 선이 매우 과장되어 있으며, 연장된 지붕 끝이 높이 들려 있는 등 과시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있다. 여기에는 건축자의 열망이 반영되어 있어, 후대에 지어진 건물일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토라자 건축의 지붕 변화는 현재 진행형의 흐름이다.

한편으로 이는 일종의 기술적 성취와도 연관되어 있다. 건축된 지 오래된 통코난의 경우에는 지붕마루가 이루는 선이 평평한 편이다. 시기가 이를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20세기 전반에 수집된 통코난 건축 모형에서 확인되는 지붕의 선은, 오늘날보다 더 과장된 모습을 보인다. 'U'자에 가깝게 솟아 있는 모형의 지붕마루는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건축적 목표와 이상을 드러내는 것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이는 지붕선을 높이고자 하는 욕구와 그것의 기술적 성취 사이에 발생한 강박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다.

토라자 건축은 나무 기둥을 통해 지면과 생활공간을 분리하는 '고상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는 신석기 중반 정도에 아시아 각지에서 등장한 건축 양식으로 오늘날 건축의 필로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토라자 인의 원 거주지로 이야기되는 양쯔강 주변에서는 기원전 5,000년경의 허무두(河姆渡) 문화에서부터 이러한 양식의 건축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문화적 교류, 인구의 이동 등의 원인으로 각지로 퍼져나갔다.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는 이러한 고상식 구조가 여전히 전통 건축의 기본을 이룬다.

지면에서 곧추선 다수의 기둥, 그 위에 올라간 생활공간인 건물 본체, 그리고 말 안장형으로 상승감과 규모가 과장된 지붕 등이 통코난의 외형적 특징이다. 그렇지만 과장된 지붕선을 제외하면, 이러한 양상은 동남아 지역 건축에서는 일반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 외 통코난의 건축적 특징 중 하나는 건축 외면을 장식한 다양한 장식 문양이다. 이는 우리 건축의 단청과 닮았다. 이는 외부로 노출된 거의 모든 부재에서 확인되는데, 반면 건물 내부에는 간소한 몇 가지 문양만 사용되거나 이마저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토라자 건축 문양은 몇 가지 공통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건물의 위치나 부재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아울러 각각의 '문양'과 사용된 '색'에 대한 그들만의 해석과 의미부여가 존재한다. 중심 주제로 나타나는 소재에는 닭·태양·달·물소·물소뿔 등이 있다. 이 중 물소뿔은 장례의식 등에 쓰인 실물을 그대로 활용하여, 건물 외관을 치장하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 전통시대 토라자 사회는 애니미즘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이들 문양 요소는 각각 그들의 종족적 기원과 종교적 숭배 대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림1중앙#

통코난의 외벽은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판재로 장식되어 있다. 이 목재판들은 앞서의 장식 문양을 조각도로 새긴 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 안료를 사용하여 채색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마을 주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다. 마을 공동체의 건축 참여는 전문적인 건축 지식이 요구되는 하부 구조 구성을 제외한 전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들은 건축가이며, 조각가이고, 또한 화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양상은 건축과 예술이 미분화했던 시절 '한' 사회의 구조를 보는 듯하다.

토라자 족의 마을은 특정 씨족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야트막한 산지에 위치한다. 각각의 마을은 중앙의 큰 길을 중심으로 통코난과 아랑이 마주보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러한 마을 주변으로는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으며, 고구마를 비롯한 밭작물은 주변의 작은 공터를 활용하여 재배한다. 마을의 배후 산지에는 석회암반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위치하며, 절벽을 파서 매장 공간을 만든 씨족 단위의 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토라자 주거는 이처럼 생산 기반과 주거, 저장용 건축, 그리고 매장 시설 등이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있다. 구체적 내용 형식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청동기 시대쯤 우리 조상들의 마을도 이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우리와는 동떨어진 듯해 보이는 고상건축은 신석기·청동기 시대 우리 건축의 한 축을 담당한 양식이다. 그리고 전통시대의 부경과 같은 창고, 다락집, 가옥의 마루방 등은 그러한 양식의 발달 선상에서 형성되고 차용된 건축문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건축 과정에도 이어진다. 눈썰미 좋은 동네 어르신과 솜씨 좋은 동네 아저씨의 기술, 거기에 친족 및 이웃의 품앗이로 이루어지는 건축 과정은 토라자의 그것과 닮은꼴이다. 아울러 이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각 국가들에 지금도 남아 있는 풍습과 현상이기도 하다.

토라자 족의 건축 문화가 적도 근방 거주민의 이색적인 주거 양상만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 그 의미는 크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 건축의 과거를 볼 수 있고, 유사한 문화 양상 속에서 아시아가 공유하고 있던 공동체적 가치 등을 되새길 수 있다면, 그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지난 29일 열린 '2018 아시아건축워크숍 : 인도네시아 통코난'을 통해 이러한 통코난에 대한 건축적 기록과 분석, 재해석, 미래 가치 등을 조명했다. 이는 토라자 건축에 내재한 특수 속의 보편, 이색적 양상 속에 숨어 있는 친근함을 찾아보는 기회가 됐다.

#그림2오른쪽#

배재훈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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