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에 가면 특별한 문화공간이 있다

입력 2020.08.12. 10:25 선정태 기자
전국 최초 사재털어 설립한 해남 행촌문화재단
6년 간 농어촌 문화·예술 선구자 역할 톡톡
작가에 창작공간·주민에 체험 기회 제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다.

땅끝마을에 가면 특별한 문화공간이 있다. 해남 행촌문화재단이 꾸려가는 여러 공간들이다. 6년 전 '지역 문화예술 부흥'을 목표로 내걸고 탄생한 행촌문화재단은 작가들의 작품활동 지원은 물론 학생부터 할머니까지 함께하며 생활 속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모두 선친의 유지를 받들고자 오랜 기간 사재를 털어 행촌문화재단을 운영해 온 김동국(74·해남종합병원장) 이사장의 의지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늘 새로운 전시를 이어가는 행촌미술관을 비롯해 작가들을 위한 이마도작업실 그리고 문화체험공간인 수윤아트스페이스까지 행촌문화재단이 운영중인 보석같은 공간들이다.

◆행촌문화재단

(재)행촌문화재단은 해남종합병원 설립자인 고 행촌 김제현 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아들인 김동국 해남종합병원장이 형제들과 뜻을 모아 2014년 설립됐다. 고 김제현 박사는 남도 작가들의 예술활동을 지지하고 동참하기를 즐겼던 풍류가인으로 늘 예술가들이 해남에 머물며 창작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같은 고인의 뜻을 기려 재단을 만든 후 병원 한켠에 마련한 행촌미술관을 시작으로 체험공간인 수윤아트스페이스, 창작공간 이마도작업실 등을 운영하며 동시대 문화예술의 발굴과 보존, 창작, 교류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문화를 대표할 문화예술 콘텐츠 생산을 위한 예술창작지원사업과 창의적 인재육성을 위한 장학사업을 수행하며 전남 서남부 농어촌 지역의 문화·예술을 꽃피우고 있다.

행촌문화재단은 근대미술품 800여 점과 1천여 점의 현대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동안 43회의 전시회를 통해 국내외 작가 30명의 창작활동을 지원했다.

매년 전국 예술가들을 초대해 전통예술의 체험과 창작원형이 되도록 하고 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지역의 유휴공간에 지역에 적합한 전시회를 기획 제공해 남도미술의 체계적인 연구와 더불어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를 동시대미술로 전환 개최하는데에 일조했다.

선친에 이어 해남종합병원을 20년째 운영중인 김동국 원장이 장학사업과 지역내 각종 문화·체육행사 등에 지속적인 지원과 참여는 물론 열악한 농어촌지역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어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동국 재단이사장과 김은숙 미술관장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행촌미술관

해남종합병원 동관 1층에 자리잡고 있는 행촌미술관은 입원 환자들과 가족들의 힐링 갤러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곳은 하루 1천200명 이상이 오가는 해남종합병원 내에 위치해 늘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농어촌 특성상 관람객 등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의 한계와 신체적·지역적 문화소외층인 노령인구는 물론 환자·보호자·방문자의 발길이 이어지며 힐링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해남종합병원은 지난 1981년 3월17일 개원해 설립자 고 행촌 김제현 박사가 19년 동안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문화예술계와 교류를 통해 그림, 글씨, 다구, 도자기 등 소장품 연구 보존과 문화복지에 기여해왔다.

남도일원 시각문화 발굴과 전문 예술가 지원을 통한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하고 동시대 미술문화 소외지역인 농어촌지역 주민들의 문화예술 및 예술교육향유에 애써 왔다.

현재 행촌미술관은 이달말까지 서양화가 최석운(60) 작가의 신작 30여 점을 선보이는 '이마도二馬島_낙원樂園으로부터' 전시를 개최중이다.

최석운 작가는 지난해 7월부터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작은 섬, 임하도에 있는 이마도작업실에 입주해 작업을 해왔다.

이번에 전시될 작품들은 최석운 작가가 임하도에 거주하는 동안에 작업한 신작들이다.

김동국 재단이사장과 김은숙 미술관장에게 작품을 설명

그림 속에는 작가가 이곳에서 경험한 자연물과 인물 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달빛이 비추는 유채꽃 무더기 아래 얌전히 쉬고 있는 강아지들, 배롱나무와 동백꽃, 까치와 고라니가 노니는 풍경, 갓 수확한 듯한 대파를 안고 미소 짓는 여자와 동백꽃이 프린트된 바지를 입고 물고기를 든 남자 등이다. 임하도 바다에서 건져 올린 보리숭어는 작가의 식탁에 올랐다가 그림이 됐다.

파꽃과 무꽃을 새들과 함께 그려 넣은 화조도는 화가의 기지를 엿보게 하며 그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최석운 작가는 "이마도작업실은 낭만적인 고립을 느끼는 유배지"라며 "거칠지만 예술가의 긴장과 감성의 날을 세울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마치고 양평에 있는 작업실로 돌아갈 계획이다.


▲이마도작업실

해남군 문내면 임하도 섬에 위치한 이마도작업실은 행촌문화재단 행촌미술관이 지난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창작 레지던시로 중견작가들의 휴식과 재충전의 장소로 자리잡았다.

이마도작업실의 이마도라는 이름은 작업실이 위치한 임하도의 옛 지명이다.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을 따라 건너 갈 수 있는 육지에 거의 인접한 섬이었으나 지금은 연륙교로 이어져있다. 섬 중심부 언덕 위에 교실 두 칸과 부속실이 전부인 초등 분교와, 후에 해남종합병원 수련원으로 지은 부속건물을 작업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그동안 이마도작업실에서는 서용선, 이종구, 김주호 등 60여 명의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펼쳤으며 지난 2018년부터는 전남도문화재단 공간연계형창작사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지역작가에게는 작가의 작업 기반을 재검토하고 포트폴리오 개인전 도록제작, 작가와의 대화 비평 등을 제공해 호응을 얻고 있다. 또 농어촌지역 삶의 현장을 화폭에 담는 창작활동도 이뤄져 왔다. 이곳에서 전통문화와 관련된 1천점 이상의 작품들이 창작됐으며 그중 많은 작품들이 개인전과 비엔날레, 기획전에 초대됐다.


▲수윤 아트스페이스

행촌미술관과 이마도작업실에 이어 세번째로 문을 연 수윤 아트스페이스는 해남읍 학동리 골프연습장을 리모델링해 지난 2018년 개관했다.

행촌미술관에서 전시작품을 관람

이곳은 해남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예술모험놀이터로, 어린이들의 꿈을 함께 구현할 예술가의 작업공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공간이자, 예술가들이 주민들과 친교를 나누는 곳이기도 합니다. 실제 이곳은 해남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그림으로 꾸미며 함께 만들어간 공간이기도 하다.

완성된 공간은 주민과 어린이 청소년에게 교육활동을 통한 문화예술의 씨앗을 뿌리고 기르는 곳이자 편안하고 친근한 예술 모험 놀이터가 됐다.

100여 평의 교육장과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김동국 이사장이 5억원을 출원해 150평을 추가 확장할 예정이다.

이승미(59) 행촌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사립미술관은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지기 힘들어 대부분 운영에 한계를 느끼는 곳이 많지만 김동국 이사장은 6년 동안 사비를 털어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선친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며 "국가나 지자체에서 해야 할 미술관이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데도 안내간판 하나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이 곳을 찾는 외지인들의 지적은 받으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해남=박혁기자 md181@srb.co.kr



"화폭에 담긴 해남 보며 보람·긍지"

행촌문화재단 김동국 이사장

"선친의 유품을 정리하다 형제들과 미술관 건립을 결정했습니다. 행촌문화재단을 통해 해남의 여러 모습들이 작품에 담기고 문화예술 활동이 이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보람과 긍지를 느낍니다."

김동국 행촌문화재단 이사장은 재단의 출발과 의미를 이렇게 설명이다.

현재 선친에 이어 해남종합병원장으로 재직중인 김 이사장은 "선친(고 행촌 김제현 박사)께서 예술인들과 교류를 통해 남도의 문화와 예술을 이어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성장해 왔다"며 "30~40년 전 해남읍 금강여관을 중심으로 모여 활동을 펼치던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을 돕던 선친의 모습을 보며 미술관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김 이사장은 "20여 년 전 선친이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림, 글씨, 도자기, 다구 등 500여점이 나왔고 형제들과 논의 끝에 아버님의 뜻을 모아 미술관 설립을 결정하게 됐다"며 "문화재단이나 미술관을 설립하는데는 자금이 필요해 차일피일 미루다가 돌아가신지 15년만인 2014년에 재단을 설립해 6년째 운영하면서 개인적으로 사비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으나 이제는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행촌문화재단을 통해 전국의 예술인들과 교류의 물꼬가 터지면서 지역에 머무는 작가들의 지인들과 제자들이 해남을 방문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며 "특히 해남 지역의 들녘과 산야를 화폭에 담아 전시회를 통해 청정해남의 풍광이 전국에 알려지고 있어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흐뭇해했다.

김 이사장은 또 "작가들이 이마도 작업실에서 먹고 자고 유람하면서 자연의 순수함을 흠뻑 적신 농작물과 산야의 풍광을 화폭에 담으며 힐링하는 공간"이라며 "자신들의 족적을 돌아보며 새로운 작품세계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장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전남은 도립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전무하며 최근 광양에 미술관을 신축하고 있다는데 해남 인근 서남부 지역은 언제나 도나 군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 있을지 아득하다"며 "행촌문화재단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사립미술관을 유지하는 것만도 녹록치 않은 일이지만 김 이사장은 또 다른 계획도 밝혔다.

김 이사장은 "해남읍 학동리에 있는 수윤아트스페이스 전시·교육장이 비좁아 확장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계획을 세웠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1년째 답보 상태에 있다"며 "빠른 시일내에 문제가 해결돼 남녀노소 누구나 예술을 배우며 창작활동의 메카로 자리잡는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고 웃음 지었다. 해남=박혁기자 md181@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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