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생이 아름다우신가요
여러분 생이 아름다우신가요
보이지 않는 적이
내 핏줄을 타고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유린할 때,
당신의 영혼이
허수한 고립의 정점으로 치닫는 때
여러분 생이 아름다우신가요
시간은 25시 5분전
아니 몇 초 전을 가리키고
눈부신 가로등이
전장의 폭탄처럼
마른 영혼위로 쏟아지는 날
내가 걷고 떠나온 아그마쉐네벨리의 거리는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와인색 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어둠 속 그림자에 갇힌 골목길
검은고양이의 눈빛이 칼날처럼 차갑다
아름다움과 추함
탐욕과 행복, 웃음과 눈물
손과 손 눈과 눈 가슴과 가슴
영혼과 영혼
그리고 신과 여러분
굳게 잠겨진 녹슨 자물쇠를 열고
닫혀진 문을 향해 묻는다
신이여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아그마네쉐네벨리를 떠도는
시인의 기도를 듣고 계신가요
비가 내리는가
날이 건조한가
봄이 오는가
매화가 피었다 졌는가
밖의 세월이 어찌 지나는지
알 수 없는 그 자욱한
안개의 날들
여러분 생이 아름다우신가요
진정 아름다우신가요 -한희원
마자하시빌리 지하철역에서 올드타운 방향으로 직진하면 터키 카페거리처럼 조성된 아그마쉐네벨리가 나온다. 내 숙소에서 여기를 가려면 카페 'DOM'과 작은 화랑을 지나 므뜨끄바리강 쪽으로 가야 한다.
올드타운 카페거리는 이름이 알려진 거리로 관광객들이 많아 걷기가 힘들 정도로 번잡하다. 반면에 아그마쉐네벨리 거리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복잡하지 않고 한적해 조용히 혼자 와인이나 맥주를 음미할 수 있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가게로 끌어들이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지만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다.
거리 입구에는 타마르여왕 시기에 조지아의 민족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를 쓴 국민시인 쇼타 루스타벨리의 이름을 딴 루스타벨리 대학이 있다. 그 건너편에는 접시에 그림을 그려서 파는 가게가 있다. 가게 여주인은 아랍 여성의 모습으로 접시에 아라베스크 무늬를 뛰어나게 잘 그린다. 거리를 구경하다가 우연히 가게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곳에 피아노가 있었다. 피아노를 발견한 기쁨에 물건을 몇 개 골라 사고 난 후 한국 가요를 피아노로 쳤다. 내 어설픈 피아노 연주를 들은 여주인이 깜짝 놀라며 자주 들르라고 얘기해주었다. 얼마 후 다시 찾아갔더니 가게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카페가 들어서서 여간 실망스러웠다.
루스타벨리 대학 건물에 밤이 찾아오면 바이올린 버스킹이 열린다. 버스킹을 더 즐기고 싶어 건너편 카페에 앉아 맥주가 담긴 잔을 들고서 잔 사이로 보이는 버스킹 광경을 응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복잡한 거리에 각양각색의 의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밤에 조명이 켜지면 별과 꽃이 한꺼번에 만개한 것 같은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카페거리 중간쯤에 붉은 호롱이 걸린 중국식당이 있다. 이 식당의 음식이 내 입맛에 맞아 가끔 찾았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 식당에 들어가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옆에서 붉은 코트를 입은 러시아 여인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장면이었다.
또 카페거리 끝에는 젊은 아코디언 연주자가 있는 가게가 있다. 트빌리시 거리의 아코디언 연주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이었다. 그 가게는 다른 카페보다 맥주나 와인이 두 배는 비쌌지만 아코디언 연주가 좋아 그 식당도 종종 찾았었다. 그런데 얼마 후 연주자가 사라지고 말았다. 뛰어난 연주 실력자였으니 시내로 옮겨갔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그마쉐네벨리 거리를 지나면 므뜨끄바리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 둥근 버섯모양의 지붕을 한 다리를 지나면 트빌리시의 벼룩시장과 어린이 공원, 그 다음에 트빌리시 행정처가 나온다. 밤에 이 다리를 건너 아래로 내려가면 어린이 공원 옆으로 줄지어 선 가로등이 무척 아름답다. 공원 벤치에 남녀가 앉아 속살거리며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모습 또한 황홀하다. 또 강물에 부서지는 가로등 불빛을 따라 길을 걷는 트빌리시 연인들도 목격할 수 있다. 한참 그들을 바라보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강 건너 불빛을 바라보니 노을이 머물다간 자리에 지상의 별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카페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며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멀리 사메바 성당이 금빛으로 빛나고 나는 그림을 그리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어린이 공원에서 밤늦게까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공원에는 조각들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다. 다른 트빌리시 공원에는 사회주의 인물을 조각한 것들이 많은데 이곳은 아이들을 주제로 꾸며져 있어 친근한 느낌이 든다. 트빌리시 공원의 조각상들은 정치인보다는 예술인들이 많다. 그만큼 조지아인들이 예술가를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공원 옆에 트빌리시 벼룩시장(Dry bridge Market)이 있다. 벼룩시장 안에 유일하게 있는 카페에서 가끔씩 자기들만의 은밀한 파티가 열리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은 적막에 싸여있다.
아그마쉐네벨리 거리는 밤이 깊을수록 와인에 취하고 담배를 문 여인들이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이국의 여행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 붉은 홍등도 덩달아 춤을 춘다. 저녁 무렵에 허름한 차림의 동양인이 혼자 이국의 거리를 걷는다. 나의 사랑 아그마쉐네벨리 거리를.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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