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는 트빌리시에서 북쪽으로 157㎞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해발 고도가 1,740m나 되며 서쪽에는 해발 5,047m의 카즈베크(Mt. Kazbek) 산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주위를 높은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곳이다.
이 마을의 명칭은 조지아 정교회 수도사였던 스테판의 이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스테판'은 조지아 정교회 수도사의 이름이고, '츠민다'는 성스럽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제정 러시아 시대 때 총독이었던 알렉산더 카즈베기의 이름을 따 '카즈베기'로 불리다가 2006년에서야 본래 지명인 스테판츠민다로 복원되는 수난을 겪었다.
트빌리시에서 스테판츠민다를 가려면 디두베 터미널에서 마슈르카를 타고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요금은 10라리(약 4천원) 정도로 우리나라 교통비와 비교하면 무척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 마슈르카는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제시간에 떠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인원이 다 찰 때까지 한없이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조지아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느긋하기만 하다.
마슈르카의 낡은 의자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 서양인들도 마찬가지로 느긋한 모습인 반면 한국인들은 기다리면서 얻어지는 여유로움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기다림이 불편해 좀 더 편안한 여행을 하려면 쉐어 택시 개념의 미니밴이나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물론 가격 차이는 감안해야 한다. 특히 도로를 달리다가 경치가 좋은 곳으로 차를 돌리거나 예정에 없던 명승지를 둘러보고 싶다면 미니밴을 권장한다. 자유롭게 여행을 한 후 트빌리시로 돌아올 때 마슈르카를 타면 훨씬 더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이것보다 더 여행경비에 대한 제약이 없다면 렌터카나 택시로 여유롭게 여행하는 방법도 있다.
스테판츠민다를 가기 위해서는 러시아 블라디캅카스로 가는 210㎞에 달하는 군사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이 도로는 18세기말 제정 러시아가 군사 목적으로 건설했다. 조지아에서 러시아까지 가는 도로는 두 군데가 있는데 한 곳은 남오세티야를 통과하는 도로이고 또 다른 한 곳은 스테판츠민다 도로이다. 남오세티야는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 후 빼앗겨서 현재는 블라디캅카스로 가는 군사 도로가 러시아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은 아르메니아 등의 인근 국가들과 물자 교류가 활발해 이 도로가 중요한 교역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험한 산길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화물차들의 통행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갈 길이 바쁜 여행자들을 태운 차량들도 이에 질세라 육상 경주를 하듯이 추월을 일삼으며 아슬아슬한 곡예 운행에 합류한다. 심지어 2,000m가 넘는 언덕 커브 길에서조차 수시로 추월을 해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게다가 조지아의 도로는 중앙선이 그어져 있지 않은 곳이 많아 시시때때로 당연하게 추월을 한다. 이런 위험천만한 주행에 익숙하지 않은 외지인들은 여행지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을 졸인다. 이런 충격적인 일도 며칠이 지나면 신기하게도 적응이 되고 태평해진다.
스테판츠민다로 출발하는 날은 하늘이 청명했다. 북쪽 고산지역은 날씨가 수시로 급변하기 때문에 카즈베크 산 주위의 고봉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을는지 염려스러웠다. 차가 트빌리시 시내를 벗어나 스테판츠민다로 가는 군사로 초입에 들어섰다.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낮은 산언덕을 홀로 지키는 오래된 즈바리 수도원이 금세 눈에 들어온다. 강 너머에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므츠헤타 마을이 보인다.
즈바리 수도원과 므츠헤타 마을 사이로 터키의 카스에서 발원한 므뜨끄바리 강과 코카서스 산맥에서 흘러온 아라그비 강이 합류해 흐르고 있다. 스테판츠민다로 가려면 거세게 흐르는 아라그비 강을 따라가야 한다. 스테판츠민다로 향하는 길에는 세상의 온갖 시름을 다 품은 호수와 오랜 시간을 고이 간직한 고성, 미네랄워터가 흐르는 강이 동행하며 해발 2,000m가 넘는 산악 지형을 넘어야 한다.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길 중 하나로 꼽힌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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