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조지아의 여류 화가 엘렌 아크블레디아니
밤새 눈이 내린다
나는 별빛이 사라진 밤 내내
눈 쌓인 늙은 나무 곁에 앉아
낡은 추억을 버리고 있었다
거리에 흩어진 추억 위로
흰 눈이 차곡차곡 쌓였다
세상의 모든 피팍한 人生의 의미 위에도
버려진 앨범의 두께만큼
밤새 흰 눈이 쌓인다
눈물이 가로등 불빛이 되어 흩어진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슬픈 것
눈 내리는 밤을 걷는 사람들은
모두 눈물이다
눈 내리는 밤
나는 오랫동안 나무가 되어 서 있었다
눈물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한희원의 시 '눈 내리는 밤')
쇼타 루스타벨리 동상이 마주보고 있는 곳에 아름다운 건물이 서 있었다. 아치형의 둥근 기둥이 건물을 받쳐주고 짙은 아이보리색이 퇴색된 채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트빌리시 거리의 화가들이 건물 아래에 있는 계단에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덩치가 큰 사내들이 뭉툭한 손으로 가느다란 세필 붓을 잡고서 예쁜 색채로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생소했다. 내 자신이 조지아 화가들의 작품에 문외한인지라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거리의 화가들은 여행자들을 상대로 그림을 팔기 때문에 형태나 색이 부드럽고 화려하다. 조지아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했으리라 생각된다.
거리의 화가들이 있는 계단에서는 물감이나 붓, 캔버스, 이젤 등을 널어놓은 채 판매하고 있었다. 트빌리시에서는 직접 손으로 만든 기타를 거리에서 판매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렇듯 트빌리시는 노점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이 매우 다양하다.
계단에 놓여 있는 물감을 뒤적거렸더니 안쪽에서 러시아풍의 우람한 사람이 나와 나를 바라본다. 사고 싶은 물감을 물어보니 알아들었다는 몸짓을 하면서 나를 지하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내 옆구리에 끼어 있던 화집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조지아 화가 중에서 니코 피로스마니는 외부에 많이 알려졌지만 그 외의 다른 화가들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화집의 주인공인 여류 화가는 조지아인이 사랑하는 화가인 것 같았다.
온갖 낙서 그림이 그려진 어두운 지하도 안에서 젊고 잘생긴 젊은이들이 벽에 기대서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부신 외모 뒤에서 조지아의 궁핍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교차되어 보였다. 트빌리시 변두리지역의 거리를 걷다보면 낡고 퇴락한 집에서 화려한 옷맵시를 한 아리따운 여인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고달픈 현실과 생에 대한 애착이 동행하는 것 같아 가슴 한편이 저려왔다.
버스킹을 하는 젊은이들의 모자에 적은 돈이나마 쥐어주고 러시아풍의 건장한 사내를 따라갔다. 그곳은 지하도 한 구석에 비밀통로처럼 웅크리고 있는 창고처럼 보이는 화방이었다. 벽에는 싸구려 느낌이 나는 캔버스가 널려 있고 제법 갖추어진 액자 모형들이 걸려있었다. 이 낡은 화방은 캔버스와 액자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아크릴 물감 몇 개를 사서 비닐봉지에 넣어 지하도를 벗어났다. 짐작컨대 이 근처에 근사한 화방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 옆에 끼고 다녔던 화집을 펼쳐들었다. 이국땅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화가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 같은 설렘이 일었다. 바이칼을 여행할 때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바이칼 호수 주변의 마을을 걷다 우연히 들어간 농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늙은 여류 화가를 만났었다. 정원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작은 화실에는 그녀가 그린 그림들이 가득했다. 눈에 익지 않은 독특한 그림이었지만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화집은 러시아어와 조지아어로 되어 있어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엘렌 아크블레디아니(1898.4.5.~1975.12.30)라는 여류 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20세기 조지아의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 연극장식가였다는 정도의 정보만 얻을 수 있었다.
그녀의 그림은 색이 화려하지 않았다. 어두운 색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지만 마을과 인물에서 조지아의 숨결과 신화가 담겨있었다. 마치 꿈들이 세상에 나와 떠들며 거닐고 있는 것 같았다. 잿빛의 마을과 거리에 서 있는 나무 아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조지아 사람들에게서 꿈꾸는 신화의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루스타벨리에 있는 조지아 국립미술관에서 화집에 실린 작품들을 실제로 보게 되었다. 걸음을 멈추고 오랫동안 작품을 감상했다. 그녀의 그림 속 인물과 풍경은 끊임없이 바라보며 움직이고 대화하며 사색하게 하였다. 그것은 살아있는 조지아의 신화였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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