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순사건 재심재판 현장에서

@강동준 입력 2020.01.20. 17:24
최현주(순천대 교수·여순연구소장)

김정아 부장판사 선고 낭독 중 눈물 '감동'

사법부 민간인 학살 공식 인정 의의

좌익 용공 매도 유족들 명예회복 길

무죄판결 계기 여순 특별법 제정돼야

2020년 1월 20일 순천지방법원 재판정에서는 여순사건 관련 재심재판의 선고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여순사건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판결을 받아 그 형이 집행된 장환봉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948년 11월 계엄령하의 군법회의는 계엄법이 그로부터 1년후 제정되었으므로 판결의 효력이 인정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군정에 의해 제정된 포고령 위반 혐의 또한 위법하고 부적절한 것이었으므로 장환봉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재판정을 가득 채운 여순사건 유족들과 시민 단체 관계자들은 모두 일어서 박수로 환호하기도 하였지만, 그 가운데 장환봉씨의 처 진점순씨(97), 딸 장경자씨(76)와 더불어 많은 이들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하였다. 더구나 김정아 부장판사가 마지막 선고문을 낭독하던 중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 짓는 모습 또한 감동의 한 장면이었다. 김 판사는 70여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유죄판결의 잘못을 바로잡게 되었으며 더 일찍 명예회복에 힘쓰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면서 눈물 지었다.

사실 이 재심재판 무죄 판결의 의의는 국가 대표기관인 사법부가 여순사건이 국가폭력에 의해 이루어진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행정부나 의회가 여순사건의 진정한 역사적 의의와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특별법 제정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공식사과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사법부의 판결은 대단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아직까지도 좌익으로 용공으로 매도당한 여순사건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의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와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해내지 못한 일을 사법부가 선구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매우 높은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 큰 결단을 일구어낸 김정아 판사의 눈물은 국가의 사과를 대신한 더욱 값진 눈물이었다.

이번의 무죄판결을 계기로 여순사건 해결의 새로운 역사적 지평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난 12월 23일 재판에서 유족 장경자씨가 말했던 바와 같이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장환봉씨가 결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부인 진점순씨와 딸 장경자씨의 힘겹고 고통스러웠던 70여년의 삶과 상처 또한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시간의 불가역성과 비정함이 문제인 셈이다. 여기에 불법적이고 무자비하게 저질러진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비극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이번 무죄판결을 계기로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필코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족들의 70여년의 고통스러운 삶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 이러한 국가폭력의 비극성은 여순사건만이 아니라 제주4·3항쟁, 5·18광주항쟁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시는 이같은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국가폭력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기억하면서 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최현주(순천대 교수·여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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