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상교량, 무엇이 정의인가?

@김재곤 전남도 도로교통과 주무관 입력 2020.11.24. 11:20
김재곤 도로교통과 주무관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하버드대 모 교수가 정의에 대해 쓴 책인데, 또한 가장 많이 안 읽힌 책도 그 책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괜히 아는 척이라도 해보려 그 책을 들었다가 의무감에 완독을 하느라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다.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 얼마 전에 '장산~자라간 연도교 개설공사'와 관련해 중앙부처에서 투자심사를 받은 적이 있다. 해당 공사는 우리나라 서남단에 위치한 신안군의 큰 섬 중 일부를 연결하기 위한 것이다. 2.87㎞ 구간에 해상교량과 도로를 연결하는데 1천500억여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국가에서 설치해주길 기다리다 기약이 없자 전남도와 신안군이 팔을 걷어 비용을 직접 부담하기로 한 혁신적인 행정사례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투자심사를 통과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고 국토 끝자락 한적한 섬에 다리를 놓느냐는 것이다.

수도권에 살면서 신안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이해가 부족했을 것이라고 한발 양보한다고 치자. 해상교량 설치는 국가의 균형발전과 국토의 영유권 유지, 섬 자원의 활용, 주민에 대한 편익제공, 관광자원 활용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득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정성적인 항목을 정량화할 수 있는 경제이론과 분석 기법이 아직 부족할 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모든 법과 정책에는 저마다의 철학 이념이 있다. 학창 시절 도시계획을 공부하면서 경제성 분석이 과정 중에 하나였던 기억이 있다. 가난하던 시절에 대규모 정부 예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투입 대비 효과 극대화 논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 단순한 툴(tool)로 경제성 분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기본 이념은 벤담의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나타난 사회사상으로 가치판단 기준을 효용과 행복의 증진에 두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정의로 본다. 공리의 원리는 오늘날 입법이나 정치 등 대부분의 사회적 행위를 규율하고 있다. 나아가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뒷받침하는 등 현대 시대 사회사상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사회정의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자. 피자 한 판이 있다.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일까? 평등주의 원칙에 따라 인원수대로 똑같이 나눌 것인가? 유교사상에 따라 나이순으로 크기를 나눌 것인가? 아니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마르크시즘에 따를 것인가?

과학철학자인 장하석 박사는 '과학에도 다원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 가지 절대 명제만이 인정받는 과학에서도 다양성이 필요하다는데, 여러 공동체가 구성되어 움직이는 사회 규범에서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각각의 공동체 속 구성원끼리 얽혀있는 소속감, 문화, 성격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각 상황에 맞는 다원주의적 정책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가난하던 시절의 툴을 바꿀 때가 된 것이다.

전남에는 2천165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다. 그중 278개의 섬이 유인도이다. 전남도에서는 '2030 전남도 기반시설계획'에서 주요 큰 섬 연결을 위해 118개소 192㎞에 17조 5천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중 62개소 52㎞는 완료됐으며, 12개소 29㎞는 공사 중에 있다.

다행히 지난해 1월 국가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을 시행해 신안 압해~화원, 여수 화태~백야 구간에 해상교량 7개소가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전남이 소망하는 교량을 모두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44개소 111㎞에 11조1천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열악한 지방재정으로는 하세월 걸릴 일이다. 오죽하면 전남도와 신안군이 분담해서 장산 자라간 바다에 다리를 직접 놓겠다고 나섰겠는가.

감히 제언을 해본다. '도로법'을 개정하자. 국토교통부에서 도로사업으로 사용하는 연간 예산 7조원 중 세입의 95.5%가 온 국민이 내고 있는 유류세 등 교통시설특별회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출의 95.7%인 9조 6천억원이 고속도로 등 국가도로에 사용되고 있다. 낙후된 지역 간 연결은 전남도의 섬 연결뿐만이 아닌 전국 지방정부의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국민의 세금을 국가만 사용해야 되는가?

정의로운 법과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철학이념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구인을 화성으로 이주시킨다고 하는 시대에 구시대 철학이념에 묶여 있어야 되는가?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정의로웠으면 한다. 김재곤 전남도 도로교통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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