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흙을 밟는 도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기원하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입력 2021.03.02. 11:35

기후 위기가 일상화된 시대,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에서 인류는 다가오는 자연적·사회적 위험에 대응해야할 당면과제에 봉착해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와 팬데믹, 미세먼지, 생물 멸종 같은 환경재난은 현재의 산업문명에 내재한 시스템적인 한계와 오류로 인해 발생한 구조적 재난이다.

이것은 잘못된 사회적 행위가 자연적 불화를 촉발함으로써 일어나는 복합적 재해인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포함한 지구 전체의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생각의 뿌리를 바꾸고 새로운 사고를 촉진하는 교육적 전환이 필수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6월, 이러한 근대문명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생태전환교육'을 발표하였다. 이는 자연 불화를 촉발해왔던 근대산업문명과 근대교육을 성찰하고 자연친화적이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교육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생태전환교육의 일환으로 서울시교육청은 농산어촌 유학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지구생태시민의 감수성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자연친화적 환경에서 생태감수성을 움 틔우며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더불어 나는 단순히 서울학생들이 농산어촌에 유학 오는 것을 넘어서서 도시와 농촌의 삶의 순환, 한국인의 삶의 구조 변화를 위한 정책으로 확장했으면 하는 소망도 가져본다. 최근 0.84명에 이르는 출산율 저하의 직격탄은 '변방'의 위치를 강요당하고 있는 지방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소멸하거나 소멸의 위기에 직면하는 기초지자체가 늘고 있다. 모두가 도시를 선망하게 하는 서울·수도권 중심의 한국 사회경제적 구조가 낳은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가 근대문명을 넘어서는 새로운 생태전환적 인식에 서면, 죽은 도시에서 전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은 콘크리트의 삭막함과 반생태성, 건강하지 못한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과 유리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일 수도 있다.

때마침 여러 지자체들이 '귀농지원 정책'을 펴고 있는데, 도시의 아이들이 제2의 고향을 가지는 '농산어촌 유학'이 쌍벽을 이루는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2의 고향은 한 개인의 긴 생애사 속에서 언젠가는 실제의 고향이 될 수 있다. 은퇴 이후에도 귀농을 생각한다면 어린 시절 유학한 농산어촌은 바로 그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귀농지원정책이 농산어촌을 살리는 단기지원대책이라고 한다면, 농산어촌 유학은 장기지원대책이라고 의미부여해도 좋겠다.

사실 전남농산어촌 유학 정책을 추진하면서 나는 학생들이 30∼40명만 신청해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100여명이 넘게 신청했고, 매칭 과정에서 82명이 농촌유학을 떠나게 된다. 전남 장석웅 교육감이 이야기한대로 교육정책으로서는 '대박'이 났다고 말해도 좋지 싶다.

그 원인을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시민들의 생태환경적 감수성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것이었다. 아마 10년 전에 이런 사업을 펼쳤다면 많은 호응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재난을 경과하면서 인간의 반생태적 만행으로 자연서식지를 잃어버린 바이러스가 인간을 '침공'했을 때 얼마나 엄청난 재난을 가져오는지를 경험한 시민들이 자연스레 변화된 감수성을 갖게 된 것 같다. 전세계적 기후위기 시대에 직면하여 자연친화적 삶에 대한 새로운 희구가 생겨나고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 김민기의 '그 사이'를 들으며 새삼 '해 저무는 들녘 밤과 낮 그 사이로 하늘은 하늘 따라 펼쳐 널리고 이만치 떨어져 바라볼 그 사이로 바람은 갈댓잎을 살구러 가는데…'의 노랫말이 훅 다가왔다. 어린 시절 해질 무렵 들녘에서 느꼈던 아릿한 감정을 불러온 것이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농촌살이의 경험으로 이러한 노랫말도 자연스레 음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면 좋겠다. '흙을 밟는 도시 아이들'이 콘크리트 숲의 파편화된 삶에서 벗어나 자연친화적인 환경 속에서 생활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제철 먹거리를 경험하며 새로운 친구·이웃과 관계 맺기를 통해 잘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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