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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 '마지막 땅'을 읽는 시간

@김현주 광주인성고 교사 입력 2020.11.02. 13:11 수정 2020.11.02. 13:21

원미동에 땅값이 꽤 올랐나 보다. 땅을 가진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껑충 뛰어 오른 땅값에 땅을 팔아 부를 늘려갈 때 강 노인은 땅을 절대 팔지 않겠다며 강남부동산을 운영하는 박씨의 회유에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땅에 거름을 주며 고추 모종을 키워내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자식들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그 강남부동산으로 향하던 날도 강 노인은 자신의 밭에서 자라고 있는 고추모종이 갈증을 느끼지 않을까 하여 부동산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밭으로 옮기며 소설 '마지막 땅'은 끝난다. 도로 정비 사업과 도시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 원미동을 배경으로 지어진 양귀자 님의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 중 '마지막 땅'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강 노인의 땅을 두고 원미동 사람들과 강 노인 사이의 갈등은 깊어 간다. 게다가 강 노인이 농사를 짓는 방식이 인분으로 거름을 내어 밭에 뿌리는 것이다 보니 냄새와 물것들로 인해 동네 사람들은 반상회 안건으로 강 노인의 농사 방식을 올리기도 하고 관할 구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불만의 표시로 마을 주민 몇몇은 강 노인의 밭에 연탄재를 마구 뿌리기도 한다. 그 밭을 본 강 노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땅은 생명을 키우는 곳이지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는 강 노인과 빈 땅에 새로이 건물도 짓고 길도 내면 동네가 훨씬 번듯해지고 집값도 오르고 좋을텐데, 강 노인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마을 사람들. 심지어 강 노인의 가족들마저도 강 노인이 땅을 팔아서 자식들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입장이라 강 노인의 마음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으리라.

아이들에게 너희가 만약 그 당시 원미동에 살고 있다면 어떤 입장을 지지할 것인지 물어 보면 대부분 마을 사람들 편에 선다. 그 이유로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강 노인 한 사람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럼 다시 묻는다. 학급에서 회의 중 의견을 낼 때나 어떤 사건이나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이었던 적은 없었는지. 그 의견이 소수라서 인정 받지 못할 때 기분은 어떤지 물어 본다. 원미동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비롯되었기 보단 가치의 충돌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하여 그 의견 위로 연탄재를 던지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라 한다. 나아가 학생끼리만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가치가 서로 충돌할 때 너희들의 마음은 어떠한지 묻는다. 그리고 나서 강 노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시간을 갖는다. 우리는 무수한 가치 충돌을 경험하면서 산다. 그때 난 어떠했던가?

강 노인과 동네 사람들 사이에 서로에게 무엇을 배려하고 어떤 것을 양보할 것인지에 대한 소통은 없었다. 자식들의 빚 때문에 결국 스스로 자신의 땅을 팔러가는 강 노인의 뒷모습은 패배자의 그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에 기반한 도시화의 물결은 그 당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강 노인의 가치와 신념이 과거 어느 시점에 머무른 도태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땅에서 무언가를 키우고 그렇게 그 땅과 함께 살아가려던 강 노인의 모습은 언제부턴가 도심 속에서도 텃밭 가꾸기로 드러나기도 했으니. 우리 학교에도 한 구석 볕 잘드는 곳에 자리를 튼 텃밭엔 지난 여름 그 자그마한 땅이 넘치도록 상추가 자랐고, 방울토마토가 따글따글 붉어지면 텃밭 앞에 모인 이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로 옥수숫대를 키워내곤 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점심시간이면 식사를 마치고 교사나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을 산책길 삼아 도는 풍경이 생겨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긴 말줄임표의 점 하나하나로 보인다. 마스크를 쓰고 가을 하늘 아래를 함께 걷는 말줄임표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래도 관계는 깊어간다. 머지않은 날, 아이들과 우리의 입을 가린 마스크들이 저 가을 하늘 흰 구름으로 둥실 날아가길 바란다. 같이 걷는 것으로도 우린 많은 말을 대신하기도 한다. 인류의 진화는 도구의 사용이 아니라 소통에서 왔다는 것을 다시금 믿는다. 김현주(광주인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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