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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교 교육

@이운규 신용중 교사 입력 2020.12.14. 10:27 수정 2020.12.15. 14:10

올해 수능 시험이 치러지던 날 영국 BBC 방송은 '코로나 전염병도 막지 못한, 인생을 바꾸는 한국의 시험'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한국에서는 이 시험 한 번으로 학생들의 미래 인생이 바뀐다고 썼다. 그래서 이 날이 되면 온 나라가 숨을 죽이는데, 실제로 듣기 시험 중에는 모든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되고, 당일 공무원들 출근 시간이 늦춰지며 군사 훈련이 중단되고 심지어 주식거래소 개장 시간도 늦어진다고 했다. 이 기사는 당일 BBC 기사 중에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읽은 기사 목록에까지 올랐다.

수능 시험이 이토록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결국 수능 시험을 위한 것으로 되었다. 다시 말해 '교육'이 '시험'을 위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시험이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나 같은 윤리 교사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학생들에게 '윤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에 수능에 나올 윤리 문제들을 예상하고 그 답을 가르치는 데 윤리 수업 시간을 쓴다.

'윤리'와 '윤리 시험 문제'는 다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인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 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답을 찾는 것이 '윤리'라면, '윤리 시험 문제'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의 수능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다. 다음은 올해 수능 시험 사회탐구 영역 중 '윤리와 사상' 마지막 문제(20번)이다.

문제 : 다음은 한 강연자의 강의 내용이다. 이 강연자가 지지할 주장으로 옳지 않은 것은?

강연 내용 : 우리가 연속적인 동심원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첫째 원에는 자신, 다음 원에는 가족, 이어서 이웃과 지역 단체, 같은 도시의 시민과 같은 나라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원의 바깥에 인류 전체라는 가장 큰 원이 있습니다.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의 임무는 그 원들을 중심으로 끌어당겨 모든 인간을 우리의 동료 시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선택지 :

①세계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공유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②누구도 우리의 관심 밖에 있는 이방인들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③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을 도덕적 의무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④보편적 인류애가 아니라 가족과 이웃에 대한 친밀감을 중시해야 한다.

⑤어떠한 편견도 타인을 혐오하는 구실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문제는 '세계 시민주의'라는 윤리 사상을 학생들이 이해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강연 내용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지역이나 국적 등의 경계를 초월해 인류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우리 자신을 한 사람의 세계 시민으로 생각하자는 주장이기 때문에 선택지의 ④는 이 주장과 부합하지 않고, 그래서 정답이 된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알아맞히기 위해서는 '세계 시민주의' 사상에 대해 공부하여 이해하고 있으면 된다. 교사인 나는 학생들에게 이 사상의 주장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면 된다. 내가 윤리 수업 시간에 해야 할 일은 그것이다.

그러면 생각해 보자. 이러한 수업은 위에서 내가 말한 '윤리' 수업이라고 볼 수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 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이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는 수업인가? 위 수능 시험 문제와 관련해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이 질문들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 생각해 보고, 친구들과 선생님과 토론해 보는 수업이 진정한 '윤리' 수업일 것이다. 우리는 가족과 이웃을 넘어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도 도덕적인 의무로 여기고 실천해야 하는가? 우리가 보편적 인류애보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친밀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인가?

'입시 위주 교육 체제' 아래서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이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는 수업, 또 다른 사람들과 토론해 보는 수업은 실제로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운규 신용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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