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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칼럼] 의사 '선생님', 그 호칭의 무거움

@유지호 입력 2020.12.02. 13:26 수정 2020.12.02. 15:00


'선생(님)' 호칭이 각인된 건 1990년대 무렵이었다. 남북고위급(총리) 회담의 기억은 강렬했다. 90년 9월 초 서울에서 열린 1차회의 당시 강영훈 국무총리와 북한의 연형묵 정무원 총리가 신경전을 벌였다. 호칭을 놓고서다. 연 총리의 계속되는 '강 선생' '수석대표 선생' 호칭에, 강 총리가 선생으로 맞받으며 발끈했다. 언론에선 '남한 체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 '북한에선 선생이 극존칭'이란 해석을 내놨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호남에선 '선생님'으로 불렸다. 호칭은 싸움으로 번졌다. 선생님 또는 '님'자가 빠졌다는 이유에서다. 3김 정치와 지역주의가 극성일 때, 술김에 홧김에 벌인 영·호남 출신들의 주먹다툼은 사회면의 단골메뉴였다. 권위주의 청산이라며 반색한 적도 있다. 88년 5월,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DJ가 선생님 호칭을 사용치 말아달라고 주문했다는 뉴스 관련해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선생이란 단어엔 여러 뜻이 있다. '논어' 위정 편에는 부모 또는 부형으로, '맹자'에는 자기보다 먼저 도를 깨친 사람을 일컬었다. 스승·교사들에게만 쓰인 적도 있다. 영어 단어 중 닥터(doctor)가 그 중 하나. 의사를 뜻하는 닥터는 라틴어 '가르치다(doceo)'에서 파생된 말이다. 공교롭게도 의사는 '선생님'이란 호칭이 붙는 몇 안되는 직업 중 하나다. 예나 지금이나 '님'자를 붙여 존칭하는 걸 보면, 존경의 의미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그 만큼 예우한다는 뜻일게다.

"코로나19 거점" 전대병원 책임론

요즘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 댓글에는 일부 의사들을 비난하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근거없는 추측에서부터 "병원이 바이러스 온상이 됐다"는 비아냥도 있다. 코로나19 관련한 전남대학교병원 이야기다. 지난달 13일 신경외과 전문의가 처음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지금껏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만 19명 감염됐다. 분노는 '책임론'으로 옮겨붙었다. "의사들이 위생 관념도 없이 환자를 치료했다는 게 끔찍하다." 필자가 썼던 기사에 달렸던 댓글 중 하나다. 구상권 청구까지 요구했다.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일탈 여부는 방역당국의 조사를 통해 시시비비가 갈릴 것이다. 하지만 그 간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그들의 민낯은 실망스럽다. 코로나 시국에 상무지구 술집에 가고, 그들 만의 회식을 했다. 병원에선 "방역 수칙에 어긋난 채로 진료를 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모두 국립 거점병원이자 국가지정 감염병 치료 병상이 있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가는 컸다. 일부 병동은 집단(코호트) 격리됐고, 진료·응급실 폐쇄가 이어졌다. 피해는 진행형이다. 생사의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에서부터 오늘 수능을 치를 고3 수험생까지…. 환자와 보호자·지인, 그리고 가족까지 n차 감염이 되풀이 됐다. 예기치 못한 사회적 비용도 발생했다. 광주교도소까지 침투하면서 교도 행정은 물론 재판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광주·전남, 경기도까지 넘나들며 환자는 100명에 육박한다. 경제적 손실만 460억여원(2일 현재, 확진자 97명 기준)에 달한다. 지난 9월 광주시는 확진자 1명 당 소요 비용을 4천781만원으로 추산했다.

무너진 '라포르'… 신뢰 회복은?

의사들은 명의의 기준으로 의사와 환자의 심리적 신뢰를 뜻하는 '라포르(rapport)'를 꼽는다. 의료는 서비스다. 시혜가 아니라 환자에게 봉사하는 직능이다. 사회적 대우와 신분 보장이 확실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미국 오터바인대학의 심리학 교수이자 임상심리사인 노엄 슈펜서가 쓴 '라포르'에는 이를 엿볼 수 있는 대화가 나온다. "정말 (치료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라는 환자의 물음에, 그(의사)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니요. 하지만 당신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도움을 드릴 수는 있어요."

주관적 감정과 선입견을 배제한 객관화. 환자 입장(중심)에서의 상담과 치료를 위해 거리두기를 택했다. 신뢰는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 좋은 의사가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듯, 환자들 역시 담당 의사의 말은 신뢰한다. 그래야 자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입원 환자·보호자를 통해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져 나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의사는 의료기술자가 아니라 인술(仁術)을 갖춘 '선생님'이 돼야 하는 이유다.

전대병원이 1일부터 다시 가동됐다. 호칭엔 사회적 약속이 담겼다. 전대병원에 묻고 싶다. 선생님 호칭에 걸맞게 최고의 엘리트로서, 현대의 '히포크라테스'로서 덕성과 품격을 갖추고 있는지를. 추락한 라포르를 어떻게 회복할 건지를. 고개 숙이는 사과 대신 행동이 뒤따르는 자성을 촉구한다. 왜 분노와 부끄러움은 광주 시민들 만의 몫이어야 하는가. 유지호 디지털미디어부장 겸 뉴스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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