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시정만담- 되돌아 보고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김영태 입력 2021.03.03. 10:05


돌이켜 보면 짧지않았던 세월이었습니다.

이 산에 꽃이 피고 저 들녘에서 새가 지저귀던 봄. 계절이 바뀌었는가 했더니 어느 결에 기온이 올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늘을 찾게하고 지구 온난화를 유발한 행위를 자학하게 만들던 여름. 그리고 나락 영글어 가는 논두렁에 훌쩍 큰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이고, 잎지는 나무에 스산한 바람이 스쳐가던 가을. 또 잿빛 하늘이 자욱한 미세먼지를 품고 아스팔트 바닥으로 낮게 내려앉은 겨울.

그렇게 반복됐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맞고 떠나 보내면서 어느 덧 33년이 지나갔습니다. 광주·전남의 대표적인 정론지인 무등일보의 공채 1기로 입사해 언론인의 길을 걸어온 필자로서는 지나온 세월의 면면에 대한 회고와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세월 속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때로 감동하며, 때로 분노하며, 때로 정의롭지 못했던 스스로를 질책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글들을 써왔던 시간들을 묵연히 회고해 봅니다.

먼저 필자가 무등일보 지면에 게재했던 글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사회를 얼마나 변화시켰을까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얕은 지식과 타고난 재주없음에서 연유한 어줍잖은 글들로 세상을 미혹케 하려는 바가 없었는지 자책감이 적지않습니다.

대학 시절 제 은사이셨던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미디어학부)는 제가 썼던 글을 읽으시고 "'재주부리지 않고 글을 쓰는 재주'를 지녔다"고 평가해주셨습니다. 교수님은 "그건 그가 재주부리지 않고 사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가 말한 바와 같이, 말의 속과 겉이 다르고 의식과 표현이 서로 어긋나면 글이 삿되게 마련인데, 그의 글은 그런 글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그의 글에서는 등불냄새가 난다"고도 하셨습니다.

참으로 분에 넘치는 과도한 평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의 그러한 글들이 과연 사람들의 살이에 도움을 주었는지, 더 넉넉해지게 하고, 더 여유로워지게 하고, 주변의 여러 여건과 더불어 안녕들 하게 만들었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입니다. 설익은 문장과 깊지않은 사고로 세상사를 논하고자 했던 필자의 판단과 평가가 부끄러운 수준은 아니었는지 조심스러운 마음 또한 감출 수 없습니다.

필자가 썼던 여러 글들에 대한 평가는 오롯이 그 글을 접하고 수고롭게 시간을 내어 읽어 주었던 무등일보 독자 제위께 달려있다고 봅니다. 다만 필자로서는 부족했으며, 미숙했으며, 치밀하지 못했음을 오래도록 자책하며 머리 숙여야할 일이라는 상념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필자는 '말과 글'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말과 글은 생각의 외연화'라고 나름 정의했습니다. "생각이 바르고 곧아야 말에 품격이 있고 글에 정연함과 무게감이 더해진다"는걸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얕지않은 수양, 오랜 독서와 사유의 과정이 바탕이 되어야 정제된 생각, 풍성한 말, 달관한 글들을 선 보일 수 있습니다. 말과 글은 의식의 산물이며 그 의식의 표현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말의 속과 겉이 다르고 글에 대한 의식과 표현이 어긋난다면 이는 세상을 호리는 독(毒)으로 요언(妖言), 삿된 글에 불과합니다. 이같은 점에 비추어 필자의 글과 말이 요언, 삿된 글이 아니었길 바랍니다.

지나간 날, 이런 저런 풍파에 맞서 필자는 그래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기개를 잃지않으려 애쓰며 글을 쓰고자 노력했습니다. 되돌아보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오래전 글솜씨가 빼어났던 한 작가는 "사람은 흘러가는 물에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꿈이 꿈이 아님을 알려면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흐르는 물에서 나오고 꿈에서 깨어나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짧지않은 시간 필자의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에 공감해 준 무등일보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필자에게 무언의 용기를 주고 격려해주었듯 앞으로도 무등일보가 변함없이 정론직필의 길을 가도록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아울러 필자와 함께 같은 길을 걸었거나 걸어가고 있는 언론계 수많은 선배들과 후배들의 격려, 질책, 가르침. 이를 모두 아우른 고마움을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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