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의병은 구국 일념으로 봉기

입력 2019.11.12. 13:56 최민석 기자

임진왜란 당시 일어난 나주의병은 관군 붕괴에는 관계 없이 순수한 구국의 취지로 결성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해현 초당대 교수는 최근 열린 ‘나주의병 학술심포지움’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 교수는 나주시와 나주문화원 주최로 지난 8일 오후 나주시민회관에서 열린‘임란 나주의병 학술심포지엄’에서 발제를 통해 이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본보에 ‘새로 쓰는 광주·전남 3·1운동사’를 연재 중인 초당대 박해현 교수의 ‘임진왜란과 나주의병’이라는 주제의 기조발표와 ‘임진왜란 전후의 한일관계’(이훈, 한림대), ‘나주 지방관의 대응과 역할’(이효종, 국립나주박물관), ‘김천일 의병부대의 활약상’(김경태, 전남대) 등의 주제발표 및 김문자 교수(상명대)의 사회로 나행주(건국대), 신윤호(해군사관학교), 제장명(순천향대) 교수의 등 토론이 이어졌다.

심포지엄에는 강인규 나주시장을 비롯한 200여 명이 참석, 임란 의병에 대한 지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박 교수는 “임진왜란 때 호남지방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키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국가와 국왕을 구하기 위해 경성으로 출전한 나주 의병의 결성 배경, 구성 인물의 성격, 나주 의병의 활동 등을 심층 분석한 결과 이같은 양상으로 의병운동이 전개됐음을 알 수 있다”며 “전라도 관군의 붕괴에 따른 공백을 메꾸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는 기존의 견해와 달리 나주 의병은 관군의 붕괴 이전에 구국의 일념으로 먼저 결성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진왜란 초기 나주 의병은 동인계와의 향전에서 승리한 김천일의 서인계가 주도했고 서인계가 전쟁 과정에서 대부분 전사함으로써 힘을 잃고, 오히려 유배로 인해 목숨을 건진 동인계 인물들이 정유재란 때 관군을 돕는 등 의병 활동을 통해 향촌에서 주도권을 잡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천일이 이끄는 나주 의병은 강화도를 지켜냄으로써 의주에 있는 행궁과 충청·전라·경상도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여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함께 “나주 의병이 진주성을 죽음으로 사수함으로써 호남 지역이 보호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며 “그동안 김천일 중심으로 이루어진 나주 의병 연구를, 나주 의병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김천일 외가 양성이씨, 일족이 의병에 뛰어든 양산숙, 임환 등으로 연구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날 발표에서 국립나주박물관 이훈 학예관은 나주가 당시 조명연합군 수군의 군량 보급기지였음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나주=김진석기자 suk1586@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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