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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 서생 눈에 비친 조선 사회

입력 2015.07.31. 00:00

일기를 쓰다

김하라 지음/ 돌베개/ 각권 1만1천원

18세기는 조선의 르네상스 시기로 평가된다.

조선 영조 31년(1755)에 태어나 한양 남대문 근방에 살던 젊은 사대부 유만주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거자(擧子)였다.

서른세 살에 요절하기까지 관직에 오르지 못한 채 역사서와 소설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며 독서가이자 작가로 살았다.

그가 남긴 유일한 저술은 스무 살이 된 1775년 1월 1일부터 세상을 뜨기 전까지13년간 성실하게 쓴 일기인 '흠영'(欽英)이다.

가로 22.5㎝, 세로 35.8㎝ 두툼한 공책 24권으로 이뤄진 흠영은 유만주의 생각과 일상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와 풍속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흠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소논문 여러 편을 발표한 김하라 규장각 선임연구원이 흠영 가운데 현대인에게 의미 있는 부분을 모아 엮은 '일기를 쓰다'를 발간했다.

1권에는 책과 지식에 대한 열의가 넘쳤던 유만주의 개인적 면모와 관련된 내용을 수록했고, 2권은 18세기 조선의 면면을 가감 없이 묘사한 글로 구성했다.

유만주의 자호(自號)이기도 한 흠영은 '꽃송이와 같은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을 흠모한다'는 뜻이다.

그는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하지만 나의 글은 '흠영'에 있고, 나는 시를 잘 쓰지 못하지만 나의 시는 '흠영'에 있으며, 나는 말을 잘 못하지만 나의 말은 '흠영'에 있다"고 적을 만큼 일기에 애착을 보였다.

흠영에는 18세기 서생인 유만주가 좋아하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지도, 역사책, 주렴, 여행, 다래를 자주 거론했고 이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유만주는 '사기'를 집필한 사마천과 어깨를 겨룰 만한 역사가가 되고자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과거에 낙방한 사람을 파락호로 여기는 사회 통념에 상처를 입었다.

말년에는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일을 하고, 범부(凡夫)의 마음으로 학자의 일을 하며, 부유(腐儒, 케케묵은 선비)의 식견으로 영웅의 말을 하고, 무뢰(無賴)의식견으로 품격의 말을 한다"며 복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흠영은 평론집이자 기행문이기도 했다.

유만주는 "나라의 기강은 이처럼 시들하고, 풍속은 이처럼 각박하며, 물가는 이처럼 앙등했다"며 살기 힘든 세태를 꼬집었고 "상민과 천민이 공공연히 '양반'이란 글자를 가져다가 서로 방자하게 일컫는 것은 이미 풍속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그는 직분도 경제력도 없는 형편이어서 두 발로 여행을 다닐 수밖에 없었지만,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필체로 곳곳을 묘사했다.

남산 봉수대에 올라 뚝섬을 굽어보면서 "강물빛이 몹시 푸르러 마치 바로 눈앞에 마주하는 것 같았다"고 했고, 정릉(貞陵)에서는 "햇빛이 새어드니 몹시도 그윽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고 적었다.

유만주는 부친에게 일기를 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는데, 다행히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돌베개가 펴내고 있는 '우리고전 100선'의 19, 20번째 책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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