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정형남 단편소설집 '진경산수' 출간
전라도 사투리 입담 살려 서정적 분위기 연출
30여 년의 부산 생활을 접고 귀향해 전남 보성에서 창작활동에 전념 중인 중견소설가 정형남의 신작 단편소설집 '진경산수'가 출간됐다.
'진경산수'는 작가의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집으로서,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이 정형남 특유의 서정과 함께 되살아나고 있다.
전남 보성이라는 공간구성을 배경으로 도시를 벗어난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 이번 작품집에는 정형남 작가의 여유로운 감성과 더불어 ‘한(恨)’이라는 민족 고유의 정서가 잘 드러난다.
이처럼 '진경산수'는 생생한 전남 사투리의 입담을 살려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욱 극대화한 여덟 편의 단편을 한데 엮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섬을 빠져나가는 탓에 고립된 전남 화도(花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 '꽃섬'을 시작으로 '진경산수'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기억 저편을 조금씩 소환하고 있다.
주인공 ‘나’는 조카와 함께 배낚시를 하다 바다 멀리 보이는 섬 사이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꽃섬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린다.
‘나’는 함께 마을에서 버팀목처럼 지내던 종구 형이 그의 약혼녀와 행복했던 찰나의 순간을 그리며 사람의 인연에 대해 새삼 감격한다.
조카를 바라보며 골머리를 앓는 하명 양반의 이야기가 담긴 '소 쌀밥'은 '진경산수'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유쾌하며 서사가 짙은 작품이다.
하명 양반은 조카와 베트남 아가씨의 만남을 주선하여 이내 결혼식을 올리게 하였으나 술독에 빠진 조카의 몰골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베트남 색시는 계속되는 조카의 술주정에 고향으로 떠나겠다고 가출을 한 상태이며, 조카는 색시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하명 양반에게 하소연을 시작한 것.
그러던 중 하명 양반은 아내로부터 조카 색시가 홀몸이 아닌 채로 다문화여성쉼터에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데…. 시골 다문화가정의 단란하고도 소란스러운 삶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작품집 '진경산수'에서는 백제와 통일신라 시대, 일제강점기, 베트남전을 넘나드는 한국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작품이 더러 등장한다.
그중 대표적인 소설 '고인돌'은, 베트남전에 파병되어 고엽제 후유증으로 병마의 고통을 겪는 한 사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죽음의 길을 찾아 나서듯 산에 갇혀 지내며 살아가는 사내에게, 과거 함께 동거하던 여인이 찾아오며 극적인 재회를 겪는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사내는 여인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견디며 절망에 휩싸이는데….
너럭바위 밑에 나란히 시신이 된 사내와 여인을 발견한 마을 노인들은 사내와 여인이 묻힌 너럭바위가 과거 족장의 무덤이 틀림없는 고인돌일 것이라며 이야기를 나눈다.#그림1오른쪽#
'진경산수'에 실린 여덟 편이 단편들은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진경산수화와 같은 작품이다.
소설가 정형남은 현대문학 추전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남도(6부작)'으로 제1회 채만식문학상을 수상했다.
창작집 '수평인간' '장군과 소리꾼', 중편집 '반쪽 거울과 족집게' '백 갈래 강물이 바다를 이룬다', 장편소설 '숨겨진 햇살' '높은 곳 낮은 사람들' '만남, 그 열정의 빛깔' '여인의 새벽(5권)' '토굴' '해인을 찾아서' '천년의 찻씨 한 알' '삼겹살'(2012년 우수교양도서) '감꽃 떨어질 때'(2014년 세종도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해피북미디어 220쪽 1만3천원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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