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매드릭 지음/박강우 옮김/지식의날개/1만6천500원
누구나 알고 있듯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손’은 철저하게 통제된 비현실적인 조건에서 성립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현실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여러 금융정책들은 자유방임주의 혁명이 시작된 197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고 세계경제는 물론 나라경제, 가계경제까지 휘청이게 된 것이다.
경제 칼럼니스트 제프 매드릭은 ‘경제학의 7가지 거짓말’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비롯해 주류경제학 이론을 지배하는 7가지 명제들이 어떻게 거짓말에 가깝고 경제와 사회에 해악을 끼쳤는지 역사·실증적 관점에서 파헤친다.
불황은 가만히 두거나 허리띠를 졸라 매면 해결된다는 ‘세이의 법칙’에 따라 ‘확장적 긴축’ 정책을 펼친 결과 유럽 경제는 더 큰 불황에 빠지고 말았다. 또 시장 경제의 효율성을 과신한 나머지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한 결과 교육, 기술혁신, 복지 등 시민사회와 공동체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이밖에 ‘물가안정목표제’ 아래 인플레이션을 낮은 수준에서 안정시키는 데만 집중하자 완전고용과 금융안정을 소홀히 하게 돼 만성적인 고실업과 금융위기의 위험이 초래됐다. 특히 ‘효율시장가설’에 따라 금융증권에서 투기적 거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아래 금융규제와 감독이 느슨해지자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 명제들은 건전한 의도에서 탄생했고 그 자체로 상당한 타당성을 지니지만, 주류경제학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오·남용됐다.
주류경제학자들은 가치중립적인 진정한 ‘과학’을 추구한다면서도 자유방임주의 가치에 충실한 이론만 제시했고, 현실을 고찰하기보다는 학계 또는 정관계의 최신 유행에 부화뇌동했으며, 객관적인 방법론을 통해 분석하기보다는 이익집단이나 정치인들의 구미에 맞추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인 것이다.
경제학의 존재 근거가 자연과학과 같이 항상 성립하는 절대 불변의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경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유용한 가설을 제시하는 데 있다는 점은 앞으로 경제학자들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무리하게 달러를 차입한 국가들뿐만 아니라 이들의 상환능력을 면밀히 따져 보지 않고 무턱대고 달러를 빌려준 월스트리트와 다른 선진국의 금융기관, 더 나아가 이런 자본이동이 가능하도록 자본 통제를 철폐했던 선진국의 정책당국에도 상당 부분 외환위기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김옥경기자 okkim@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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