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경험 회고 역사성 담은 첫 창작집
“소설가 20여 년 인생을 한 단계 매듭 짓는 느낌입니다.”
80년 5월 광주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집이 나왔다.
소설가 전용호 작가는 최근 첫 창작집 ‘오리발 참전기’(문학들·1만2천원)을 출간했다.
지난 1998년 광주매일 신춘문예로 등단한 전 작가는 이번 창작집에 ‘역사성’과 ‘일사성’을 함께 담아낸다.
표제작인 ‘오리발 참전기’와 ‘물안개’, ‘사이렌 소리’ ‘마지막 새벽’에서는 그는 자신의 인생을 관통한 역사적 사건인 5월 민주화운동의 흔적을 그린다.
또 ‘어느 오후’, ‘산새도 오리나무’, ‘비빔밥’, ‘밤의 세계’에는 일상성의 문제를 밀도 있게 묘사한다.
일상의 시간이 파괴되고 잊을 수 없는 체험과 새로운 시간이 솟구치는 역사성이 담긴 소설의 첨병은 ‘오리발 참전기’다.
그는 10·26 이후 신군부 쿠데타로부터 5·18 당시까지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5·18을 일으킨 세력들을 규탄한다.
전 작가의 등단작인 ‘물안개’는 지난 1980년대의 시국상황 속에서 전개됐던 군과 공안기간의 민간인 사철 등을 모티프로 해 가족의 안위를 염려하며 교직에서 한평생을 몸담아 온 부친과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여동생 영주의 사이에서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온 현수의 이야기다.
‘사이렌 소리’는 20여 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 솥뚜껑 김태주와 쌩영감 오동만이 등장한다. 5월항쟁 당시 시민군이었던 이들은 상무대에서 수형 생활을 함께했다.
저자는 독사 최반장을 통해 상무대 안에서 자행된 잔인한 고문을 보여주고, 후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최반장(최경구)를 찾아가 복수하려는 두 사람의 여정을 그렸다.
‘마지막 새벽’은 광주항쟁의 대단원인 도청의 마지막 밤을 그리고 있는 중편소설이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전 작가는 지난 1978년 전남대 재학 시절 들불야학의 강학으로 활동했으며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투쟁위원회 홍보팀으로 들불야학 학생들과 함께 ‘투사회보’를 제작·배포했다. 5·18민주화운동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공동저자이며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김옥경기자 okkim@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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