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무라 오지로 지음/진효미 옮김/더봄/1만7천원
고대 로마 제국 멸망, 스페인의 몰락,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이들 굵직한 세계사 이면에는 부자들의 세금 회피와 서민들에 대한 증세가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진시황, 로마교황, 칭기즈칸, 헨리 8세, 히틀러, 푸틴 등 천하를 호령한 제왕과 독재자들도 세금 문제 앞에서 만큼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적인 부호 로스차일드 가문도 소득세와 상속세로 쇠퇴했고, 세기적인 그룹 비틀즈도 납세를 회피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지만 결국 해체의 길을 택했다.
GAFA, 즉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회사 주소지를 두고 있다. 모두 세금 때문이다.
일본 국세청에서 10년간 법인담당 조사관으로 근무한 전 국세조사관인 오무라 오지로는 최근 출간한 ‘탈세의 세계사’에서 탈세와 증세의 역사를 다룬다.
저자는 책에서 인류 역사에서 국가가 세워진 이래 ‘세금제도’와 ‘탈세’는 세계사의 흐름과 인류의 삶에서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금이 국가와 세계사의 방향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 그와 더불어 ‘탈세’가 국가의 흥망과 역사적 사건의 고비마다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다.
‘세금’과 ‘탈세’의 측면에서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입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으며, 이해가 되지 않던 사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풀린다.
저자는 국가가 쇠퇴할 때는 세금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부유층과 특권계층이 세금을 회피하고 그 부담이 서민에게 전가돼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서민의 생활이 어려워지면 국력이 쇠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타국으로부터 침공을 당하면 국가가 붕괴한다고 봤다. 세계사에 등장하는 강대국들이 쇠퇴할 때에는 대략 이런 패턴으로 몰락했다. 즉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하지 못했을 때 국가는 멸망하는 것이다.
저자는 최근 20년간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 관계도 다룬다. 그는 최근 이들에 대한 세금은 국가적으로 대폭 낮아진 반면, 서민에게 부담이 되는 소비세가 도입돼 세율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스페인이 소비세 때문에 쇠퇴한 것처럼 소비세라는 것은 국민의 경제력과 노동력을 빼앗는 세금이다. 또 양극화를 조장하는 세금이기도 하다. 그 결과 세계는 심각한 양극화 사회가 돼 버렸다.
또 사회의 양극화는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많은 젊은 부부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둘째를 단념하고 있다. 만약 이대로 소비세 중심의 세금 시스템을 지속해 나간다면 세계 경제는 분명히 쇠퇴해 갈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저자는 “과거 역사의 사례를 통해 조속히 소비세 중심의 세금 시스템을 폐지하고 부유층과 대기업으로부터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는 역사가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옥경기자 okkim@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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