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의 유산
존 르 카레 지음/ 열린책들/ 1만5천800원
당인리: 대정전 후 두 시간
우석훈 지음/ 해피북스투유/ 1만3천800원
독서와 지식은 명장을 낳는 모태다.
1천만 관객 동원 기록을 보유한 '명장'들이 추천한 소설이 잇따라 출간돼 관심이 모아진다.
영국 소설가 존 르 카레의 '스파이의 유산'과 경제학자 우석훈의 '당인리 : 대정전 후 두 시간' 등이다.
두 작품에는 각각 '친절한 금자씨'의 박찬욱 감독과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추천사가 수록됐다.
존 르 카레는 스파이 소설이라는 장르를 넘어 문학성으로 인정받은 거장이다. 초인적 활약을 펼치는 화려한 스파이가 아니라 인간적인 고뇌를 품은 인간적인 모습의 스파이를 그려왔다.
'스파이의 유산'은 2017년 발표된 작품으로 그의 스물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1963년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후속작으로 전작에서 50여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다. 또 1990년 '은밀한 순례자' 이후로 27년 만에 '조지 스마일리'가 다시 등장하는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은 존 르 카레의 팬으로 알려졌다. 박 감독은 존 르 카레의 작품이 원작인 영국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하면서 그와 친분을 맺어 왔다.
박 감독은 추천사에서 "고등학생 때 처음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었다. 이 작품은 내가 태어난 해에 영국서 첫 출간됐다. 냉전의 최전방인 한반도에, (소설의 주 무대인 동독처럼) 전체주의·공포정치 국가였던 남한에 사는 한 소년에 이만큼 큰 충격을 준 소설은 없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후속작인 '스파이의 유산'을 손에 쥐고 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프리퀼이자, 시퀄, 백 스토리이자 표준 해설서"라며 "르 카레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계에 살지만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믿고 싶은 독자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소개한다.
장편소설 '당인리 : 대정전 후 두 시간'은 '88만원 세대'의 저자로 유명한 경제학자 우석훈의 작품이다.
한국전력 본사가 있는 전남 나주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전국 대정전'을 소재로 다뤘다.
청와대는 전국서 유일하게 전기가 공급되는 제주도로 옮기고, 비상 시 대책 방안을 마련해왔던 서울시는 마포 당인리 발전소를 이용해 전국에 전기 공급을 재개하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추천사를 작성한 연상호 감독은 우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앞세웠다.
그는 "내가 사는 곳이 당인리 화력 발전소 근처여서인지 우석훈 작가가 안내하는 재난의 모습이 현실적이어서인지 무척 오랜만에 가슴 두근거리며 읽었다. 있을 법한 재난을, 현실이 아니라 책으로 만나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이것이 현실로 나타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는 좋은 허구, 좋은 소설"이라고 강조했다.
작품은 실제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을 다루면서 모든 시스템이 붕괴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린다. 현실에 존재하는 시설과 지역들을 등장시키며 재난 발생 시 어디에선가 실존할 인물들을 통해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뉴시스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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