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작품 통해 5월 의미 형상화
30년 문학여정·삶의 노력 구현
"작가는 글로 말하는 것입니다. 장차 글로 계속 말하겠습니다."
중견작가 박혜강씨가 지난 91년 장편 '검은 노을'로 제1회 실천문학상을 받았을 때의 수상 소감이다.
그는 30년 동안 작가로 살며 한 번도 이 다짐을 잊은 적이 없다.
등단 이후 줄곧 장편소설만을 발표해 온 박혜강 소설가가 자신의 첫 소설집 '바깥은 우중'(문학들刊)을 펴냈다.
소설집 제목은 천재 시인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 발췌한 '바깥은 우중(雨中)'에서 따 왔다.
이번 소설집은 그동안 틈틈이 각종 지면에 발표했던 작품들 중 단편 6편과 중편 1편을 추려 엮었다.
수록작 중 '날개를 위하여'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이자 시대와 불화하던 사내가 "나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역시 외출 중이다"라는 문장을 남기고 한달째 행방이 묘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태평양을 횡단하며 하늘을 덮을 듯한 날개로 비상했던 그는 어느새 패각류처럼 입을 굳게 다물더니 "세상에 대한 사표"를 쓰고 오랫 동안 부재 중이다.
'미완의 탑'은 혁명에 실해한 한 청년이 도시에서 가대한 폭력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칩거한 사연을 들춰내고 있다.
간혹 몇 번의 비밀스런 외출을 거듭하다 급기야 사라졌다. 청년의 방에는 '돌무더기'들만이 가득했다.
'파랑새'는 파스텔 톤의 청색 실크스카프를 맨 한 여인이 낯선 사내의 트럭을 타고 동해로 가는 중 시아버지의 제사가 오늘이어서 장바구미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현실을 들여다봤다.
'명사십리에는 순비기가 있다'는 백지 앞에서 절망하던 한 작가가 비릿한 갯내음이 스며드는 어느 낯선 방에서 아침을 맞는 모습을 통해 '블랙홀'과도 같은 글쓰기의 중력을 이기지 못해 '타나토스'의 유혹에 넘어가는 중이다.
'품바우'는 빨치산의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이 가진 평생 동안 울리지 않는 사연을 통해 현실과 내면의 충돌을 그려냈다.
예외 없이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실종' 상태다. 이상은 가고 김해경은 남았다. 현우 뿐 아니라 해경도 부재 중이었다. 오월 광주 이후 남겨진 주체인 '미완의 탑'의 형, 남편의 부재를 견디어 내던 '파랑새'의 숙진 등 모두 남겨진 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사건 이후 폐허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는 작가의 문학적 도정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다른 표현으로 사건 이후 문학이 제출할 수 있는 진리의 공정을 수행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의 정동으로 오월을 서사화하고 어딘가에서는 역사의 한 장으로 오월을 기념비화하면서 과거의 사건으로 서둘러 정리하는 사이 작가의 분신들은 실종과 우울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빈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이 주체의 실종과 우울의 긴 동굴을 통과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서 내고 사건을 지속적으로 현재화하고 있다면 이를 '사건에의 충실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박혜강 소설가는 "빗 속 저편에 밝고 해맑은 풍경이 기다리며 실종과 우울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오월 의미와 작가로서의 문학적 여정을 되돌아보고 싶었다"며 "암울 속에 갇히더라도 결코 출구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박혜강씨는 광양 출생으로 조선대를 나와 지난 89년 무크지 '문학예술운동' 제2집에 중편 '검은 화산'을 발표하며 등단, 장편 '젊은 혁명가의 초상' '검은 노을' '다시 불러보는 그대 이름' '운주 1-5권' '조선의 선비들' '매천 황현' '곷잎처럼' 등을 냈다.
(사)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과 (사)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무등일보 편집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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