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7년' 후 '임진왜란 연작' 잇따라 출간
저항과 연대의 호남의병·광주정신 후대 계승
"역사의 음지에 묻힌 호남의 인물과 이야기를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가의 의무이자 호남인들의 정체성을 알리고 5·18민주화운동으로 상징되는 광주정신을 후대에 알리고 계승하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최근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작인 '광주아리랑'(다연刊)을 완간하고 새로운 작품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정찬주 작가는 자신의 문학관과 향후 집필계획을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 2018년 펴낸 전 7권의 장편 '이순신의 7년'을 내놓은 후 이순신 장군과 각별한 관계에 있는 보성과 강진 등 호남지역 의병장과 장군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임진왜란 연작' 형태로 잇따라 쓰고 있다"며 "이들은 모두 역사에서 소외되거나 주목받지 못한 인물들로 역사 복원은 물론 이들의 삶과 업적을 새로이 조명하는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임진왜란 연작'은 해당 지자체의 요청으로 각 군 홈페이지에 게재된 후 단행본으로 잇따라 출간됐다.
그는 특히 '난중일기' 등 사료와 현지 답사와 고증을 거쳐 논픽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묻힌 역사를 살려내고 있다.
이중 지난해 출간된 '칼과 술'(작가정신刊)은 이순신의 친구이자 병마절도사를 지낸 선거이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로 출간에 앞서 8개월 동안 보성군 홈페이지에 게재, 호평을 받았다. 또 강진 출생 김억추 장군의 삶을 주제로 한 '못 다 부른 명량의 노래'(반딧불이刊)는 강진군 홈페이지에 8개월 연재 후 단행본으로 냈다.
지난달 26일에는 강진아트홀에서 김억추 장군의 삶을 주제로 북콘서트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정 작가는 "두 장수 모두 이순신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에 파묻혀 제대로 평가되거나 조명받지 못한 인물들"이라며 "역사가 놓친 인물과 이야기를 문학이라는 틀로 가져와 이들의 위상과 업적을 널리 알리고자 소설을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임진왜란 연작'출간은 주류 역사에서 누락돼 알려지지 못한 호남의병장과 장군 등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조명함과 동시에 지역향토사를 문학적 관점으로 살려낸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나아가 임진왜란부터 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까지 호남의병에서 비롯된 저항과 연대의 광주정신을 알리고 호남인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의 연장선으로 작품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또 올해 나주 김천일 의병장과 화순 최경회 의병장을 주제로 '임진왜란' 연작을 쓸 계획이다.
정찬주 작가는 "지난 2015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우크라이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셰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를 읽고 임진왜란 연작을 쓰게 됐다"며 "실제 인물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논픽션 형식의 사실적 문체로 작품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쓴 모든 역사소설은 결국 광주정신을 매개로 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존엄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라며 ""'임진왜란 연작'이후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새로운 작품으로 독자들을 찾아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나와 상명여대부속여고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다가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스님의 각별한 재가제자가 됐다.
법정스님에게서 받은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마음에 품고 지난 2002년 이후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자리한 산방 이불재(耳佛齋)에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그동안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암자로 가는 길'(전 3권) 등 다수를 냈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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