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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이전 다룬 '광양문학사1' 나왔다

입력 2020.10.16. 16:58 수정 2020.10.28. 11:05
박혜강 소설가 광양시 의뢰 집필
지역 출신 인연 75명 문인 담아
'광양학' 정립 필요성 차원 저술
문헌 조사 현장 취재 병행 눈길

광양(光陽)은 예로부터 빛과 볕의 고장으로 불렸다. 그만큼 다른 지역보다 일조량이 풍부했다.

사람들은 기후가 따뜻해서 겨울에도 외투를 입지 않았고 인심은 풍성하고 넉넉했다.

자연적 조건은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광양도 오래 전부터 문향으로 불릴만큼 숱한 문인들을 배출했다. 최근 광양문화원이 발간한 '광양문학사1'(햇빛광고刊)은 소설가 박혜강씨가 광양시 의뢰로 지역문학사 복원을 위해 펴낸 첫번째 결과물이다.

이 책은 1800년대 이전 광양 출신 문인이거나 광양과 인연(관직·유배·여행 등으로 글을 남김)이 있었던 문인들의 기록을 토대로 엮었다.

박혜강 작가는 해당 문인들의 간략한 이력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종 문헌의 기록을 참고해 이들이 남긴 문학작품을 분석·소개함과 동시에 설명을 덧붙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졌다.

여기에는 '해동제일'이라고 했던 문정공 김황원을 필두로 75명의 문인들을 기록했다.

김황원은 고려 전기 문신으로 한림원에 재직하며 글로 유명했다.

당시 요나라에서 사신이 왔는데 김황원이 궁중 잔치 자리에서 구호(즉흥시)를 지었는데 사신이 감탄해 시 전체를 필사해갔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광양 김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조선 시가문학의 거봉인 고산 윤선도도 광양과 인연을 맺은 대표적 문인으로 꼽힌다.

윤선도의 마지막 유배지는 완도 보길도가 아닌 광양 옥룡면 추산리 추동마을이었다. 보길도는 마지막 은거지이고 광양 추동마을은 엄밀히 말하면 '마지막 이배지'였다.


그는 당시 재정이 어려운 광양향교 운영을 위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절의의 상징' 매천 황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10년 8월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절멸시' 4수를 남기고 순절했다. 황현은 조선 철종 때 광양현 미내면(현 봉강) 석사리 서석마을에서 태어났고 세종 때 청백리로 유명한 황희 정승의 후손이다.

필자는 이와함께 광양을 읊은 문인들로 퇴암 정지, 우정 조박, 노봉 김극기, 추강 남효온, 월파 서신구, 우사 전우치, 강재 손치규 등의 삶과 문학을 기록과 취재를 통해 정리했다.

또 전문가 인터뷰와 사진 확보 등을 위해 광양 등 전국 각지를 다니며 발품을 팔아 저술에 심혈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이번 저술은 지역문학사 복원 차원에서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문헌 조사와 현장 취재 등을 병행해 저술, 출간 의미가 지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혜강 작가는 이번 1권 출간에 이어 내년까지 '광양문학사2' 등을 잇따라 펴낼 계획이다.

박혜강 작가는 "문화의 토대와 모체는 문학이며 광양 지역 문화가 발전하려면 '광양학'이 제대로 정립돼야 한다"며 "모든 작업을 묵묵히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동기에서 출발한 힘과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박혜강 작가는 광양 진상면 출생으로 조선대를 나와 지난 89년 무크지 '문학예술운동' 제2집에 중편 '검은 화산'을 발표하며 등단, 장편 '젊은 혁명가의 초상' '검은 노을' '다시 불러보는 그대 이름' '운주 1-5권' '조선의 선비들' '매천 황현' '곷잎처럼' 등을 냈다.

(사)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과 (사)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무등일보 편집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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