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담은 '광주모노그래프'
김동하씨 등 지역 작가 6인 저술
음반·도서·사진·미술 등 공간 주목
시간은 사라짐을 동반한다. 그 속에서 사람의 삶도 변한다.
광주문화재단이 공간 등 서사적 주제롤 매개로 광주의 근현대 기억과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한 '광주모노그래프' 시리즈 두번째권이 나왔다.
이번 저술은 지난해 '길'을 주제로 '광주모노그래프1'을 출간한 데 이어 '가게'를 주제로 한 두번째 결과물이다.
광주문화재단이 동구 예술의 거리 등에 자리한 '가게'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광주의 근현대 기억과 문화를 알리는 '광주모노그래프' 시리즈 두번째권 '사라지는 것들에 기대다'(광주문화재단 엮음·심미안刊)를 발간했다.
'가게'라는 공간은 이를 운영하는 사장 개인의 취향대로 차린 공간이지만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날수록 연대와 소통이 이뤄지기도 한다.
책에 소개된 가게들은 생필품보다는 음반과 도서, 사진, 미술 등 문화예술 향유와 관련된 점포들로 압축하고 광주 동구 예술의 거리에서 예술인과 일반인들이 무심코 지나쳤을 식당과 다방들을 망라했다.
여기에는 '책들의 종점- 계림동 헌책방 거리' 등 5개 주제에 문학서점과 광주 고서점, 유림서점, '청글', 예술인들의 보고인 학문당과 춘추서림, 아트타운, 금성레코드사와 25시 음악사, 명음사 등 각 공간의 어제와 오늘을 담았다.
이중 '문학서점'은 1980년 7월 문구점이었던 것을 김말순씨가 헌책방으로 만들었다.
김씨가 이 서점을 시작했을 때부터 단골이었던 A씨는 학생들이 영어 제목으로 된 책, 가령 엣센스 영한사전 같은 책을 사갈 때면 뜻 모를 제목이 적힌 표지를 사진처럼 통째로 기억했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지난 2009년 작고했으나 '문학서점'은 지금도 손님들을 맞고 있다.
번성했던 예술의 거리에는 화가들이 차고 넘쳤다. 거리에 들어서면 약속을 하지 않아도 어느 사이 궁금해하던 작가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가 혹은 지인의 발길이 뜸하면 누구라 할 것 없이 화랑이나 갤러리에 들러 안부를 물었고 한국화 한 작품을 놓고 진위여부를 논하는가 하면 화법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1990년 초부터 미술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다. 각 대학 미술대에서 쏟아져 나온 화가들로 현대미술 특히 서양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미대를 갓 졸업한 화가들의 전시가 예술의 거리 공간에서 잇달아 열리면서 어느새 거리는 젊은 화가들로 넘쳐났고 도재교육으로 그림을 익힌 나이 든 화가가 대부분이었던 한국화는 빠르게 시장이 가라앉았다.
예술의 거리에서 가장 반가운 것은 광주 예술의 지성을 상징하고 있는 '서점'이었다.
지금은 상호만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춘추서림을 비롯, 예술 서적을 모아 파는 학문당과 미술서적상을 거쳐 예술서점을 연 아트타운 등이다.
하지만 예술의 거리도 시간이 지나며 모습이 변했다. 야간이면 불을 밝히던 루미나리에가 생겼다가 느닷 없이 사라졌고 매년 겨울이 되면 기존 것들을 들어내고 새로운 보도블록이 깔렸다.
저자들은 예술의 거리가 이 곳을 찾는 모든 사람과 예술인들이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예술이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더했다.
저술에는 김동하·김형중·박성천·범현이·이화경·한재섭씨 등 지역 작가 6인이 참여했다.
광주문화재단은 지난해부터 내부 회의와 외부 자문을 거쳐 집필진을 선정했고 문화를 매개로 한 광주 역사 문화 저술작업으로 해마다 1권씩 관련 저술을 발간할 계획이다.
글에 더해진 사진은 사진작가 인춘교씨가 찍었다.
저자들은 "새삼 사라져가는 것들과 오랫동안 잊혀진 것들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며 "앞으로 아놀 '광주모노그래프' 시리즈가 더 많은 사람들의 서사를 불러모으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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