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5월 묘역 참배

@김영태 입력 2020.05.17. 18:22

국립5·18민주묘지(5월 묘역)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 명실상부한 민주화의 성지다. 이 땅의 양심적 시민들이라면 5월 묘역을 모르는 이가 없다. 특히 정치인들은 나름의 선명성과 입지를 다지거나 굳히기 위해서라도 묘역을 찾아 참배를 하는게 당연한 통과의례일 정도다.

다시 5월, 묘역으로 가는 길목엔 올해도 어김없이 이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하얀 밥알 같은 꽃은 착한 며느리의 속 마음을 표현하는듯 해 더욱 이채롭다.

묘역으로 가는 길은 북구 각화동 옛 교도소 앞 도로에서 부터 시원하게 뚫려 연결된다. 하지만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중후반에는 겨우 2차선이 될까 말까한 도로폭에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의 구불구불한 길이었다. 게다가 담양군 고서면으로 가는 길목에서 묘역으로 진입하는 길은 사람 하나 겨우 다닐만한 비좁은 농로에 불과했다. 그 시절 대학생 등 젊은 친구들은 5월 묘역에서 열리는 추모 행사에 참석하려고 기를 써야 했다.

망월동으로 가는 비포장 도로는 각화동 옛 교도소 입구부터 전경(전투경찰)들과 사복 경찰들에 의해 막히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행사를 치르러 가는 5월 어머니들이 타고 가는 버스에 편승해 가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니면 담양군 수북면이나 고서면 등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나갔다가 그곳에서 내려 묘역까지 멀고 먼 길을 돌아서 가야 했다. 필자도 새벽부터 집을 나서 묘역을 찾아가곤 했던 기억이 아직 선연하다.

5월 묘역의 하늘은 이 산, 저 들녘을 초록으로 물들인 이름모를 야생화와 나무들이 뿜어내는 짙은 향기로 넘쳐난다. 수백의 영령들이 누워있는 작은 무덤 위로 내려 앉은 나비와 그 주변에서 윙윙 대는 작은 벌들 또한 그날을 기리는 듯 소리없는 몸짓으로 외쳐댄다.

박정희 겨울공화국이 붕괴되면서 찾아온 '광주와 서울의 봄'을 무참하게 짓밟고 권력을 찬탈한 불의의 세력들. 그들의 천인공노할 죄책은 제대로 단죄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설픈 면죄부에 기대 후안무치한 작태를 이어가고 있다. 그에 편승해 또 다른 불의를 조장하고 불순한 의도를 드러 내는 일탈 세력 또한 마찬가지다. 40주년을 맞는 5·18. 그간 수없이 찾아갔었지만 다시 엄숙하고 엄중한 마음으로 묘역을 찾아가야 할 때다. '어둠은 결코 밝음을 이길 수 없다'.

김영태 주필 kytmd8617@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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