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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화수분

@김대우 입력 2021.01.25. 18:45 수정 2021.01.25. 18:58

어느 초겨울 추운 밤 화수분은 둘째 형이 발을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농사일을 돕기 위해 고향 양평으로 간다.

남편이 쌀말이나 가지고 올 것을 기대한 아내는 보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자 하얀 눈이 내리는 날 어린 딸 옥분이를 들쳐 업고 길을 나섰다. 고향으로 찾아오겠다는 아내의 편지를 받은 화수분도 그 길로 서울로 향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웠다.

백리길을 걸어 해가 질 무렵 화수분은 어떤 고갯길 소나무 밑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는 아내와 딸 옥분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그 길을 지나던 나무장수가 껴안은 채 얼어 죽은 두 남녀와 그 사이에서 막 자다 깬 어린 것이 시체를 툭툭 치는 걸 보게 된다.

두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어린 것을 감싸 살린 것이다. 나무장수는 그가 몰고 가던 황소의 등위에 어린 것만 태워 길을 떠났다.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의 줄거리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로 궁핍한 환경 속에서 굶주리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화수분 일가의 비극을 당대의 참혹한 시대상을 담아 담담하게 그려냈다.

작품의 주인공인 화수분은 찢어지게 가난한 인물이지만 원래 화수분은 재물을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보물단지라는 뜻이다.

정치권에서 화수분이 회자됐다.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입을 통해서다. 홍 부총리는 지난 23일 장문의 SNS 글을 통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과도한 국가채무는 우리 아이들 세대의 부담"이라며 재정확장을 경계했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손실을 법으로 보상해주는 방안이 정치권 이슈로 떠오르자 반대 의견을 드러낸 것이다.

민주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논의한다지만 기재부의 부정적인 입장으로 진통이 예상된다. 장기화된 코로나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운 상황이 찢어지게 가난한 소설 속 화수분 부부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홍 부총리 말대로 국가 재정은 언제든 돈을 가져다 쓸 수 있는 화수분은 아니다.

다만 미래 세대의 부담을 걱정하며 결정을 주저하는 사이 굶주리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소설 속 화수분 일가의 비극이 현실에서도 재현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김대우 사회부 부장대우 ksh430@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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