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자유화 혹은 덫

@조덕진 입력 2021.02.25. 18:40

대도시 전기가 전원 차단됐다. 밖은 영하 수십도를 밑돌고 길은 얼어붙었다. 사람들은 작은 온기라도 얻기 위해 거실 액자까지 태웠다. 종래는 더 이상 태울 것도 남지 않았다.

재난 영화가 아니다. 21세기, 미국 대도시 텍사스 주도 휴스턴에서 벌어진 일이다. 텍사스의 주요 전력 공급원인 천연가스, 풍력, 원자력 모두가 한파로 일부 멈춰 섰다. 한때 470여만 가구에 전기가 끊기고, 어떤 가구는 한달 1천800여만원에 달하는 요금폭탄을 맞기도했다. 텍사스는 미국에서도 에너지 자원이 가장 풍부한, 에너지 자립도시라는 점에서 당사자들은 물론 세계가 놀랐다.

이 재난적 상황의 원인과 처방을 둘러싸고 초기 일부 보수정치인과 언론들이 재생에너지를 공격했다. 트럼프 기후협약 탈퇴가 상징하듯 미국내 친환경 에너지와 화석에너지를 둘러싼 논쟁의 뜨거움을 상징한다.

주범은 따로 있었다. 당장의 이익에 급급한 인재, 자유화라는 이름의 극단적 에너지 민영화 때문이었다. 혹한에 가능한 전기 생산 설비가 없어 발생했던 것이다. 전기회사들이 규제완화와 비용절감 등으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규제완화로 텍사스 정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추가 투자를 사업자에게 요구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텍사스는 독립적 에너지 체계로 유명하다. 연방 규제를 피하기 위해 미 연방 중 유일하게 다른 주들과 송배전 등 전력망을 연결하지 않았을 정도다. 자체발전으로 해결하며 전력 시장은 극한의 자유화로 내달았다.

가격경쟁 속에 값싼 전기를 사용할 수도 있었다. 싼게 비지떡이라고 대가는 혹독했다. 효율이라는 이름의 자유화는 이처럼 덫을 품고 있다. 아찔한 일이다. 이번처럼 불특정 다수를 고통에 밀어넣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노동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가된다. 재난적 고통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다른 한편 그게 어디 민영화만의 문제일까도 되짚어 볼 일이다. 당장 눈에 띄지 않는, 사회에 필수적인 유무형의 기반구축에 우리가 얼마나 마음 기울이고 있는지.

당장 눈앞의 이익을 뛰어넘는 것은 결국 한 사회의 역량일 것이다. 지금을 이겨내는 기대와 다짐, 공동체의 지향성과 같은. 지금 혹여 놓치고 가는 것은 없는지, 잠깐 멈춤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조덕진 논설위원 mdeung@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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