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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의 창] 약속은 갚아야 할 부채다

@이진국 ㈜에덴뷰 대표·경영학박사 입력 2020.10.26. 10:19 수정 2020.10.26. 10:49

우연히 선배를 만났다. 선배와 나는 서로의 안부를 정성스럽게 묻고 연락처까지 주고받았다.

"언제 식사 한번 하시죠!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1개월 정도 지난 후 그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락을 기다렸는데 연락이 안 와서 서운하다'라고. 나의 의례적인 인사치레로 인해 선배는 상처를 받았다. 식사하면서 선배는 나에게 '인플레가 심한 인사말은 앞으로 하지 말아라'라고 직언했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그 충격이었는지 지금은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게 되면 '언제 식사 한번 하시죠' 대신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까지 정하는 습관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인사치레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속뜻은 '반갑긴 하지만 어색할 때, 거짓말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보자'라는 두루뭉술한 인사말로 통용되고 있다. 반면 명확한 언어를 선호하는 서양인들의 대화방식으로 풀이하면 '저 사람이 나와 식사를 하고 싶어 하구나'라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당장 구체적인 약속을 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직설적 표현을 옹호한다. 때문에 공허한 약속보다는 구체적인 언어와 명료한 말로 지켜지는 약속을 해야 생존전략에 유리하다.

'어느 날, 문후가 사냥터 관리인과 사냥을 하기로 했다. 공교롭게 약속한 날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신하들이 사냥을 만류했지만, 문후는 듣지 않았다. 이에 문후는 "바람이 분다고 사냥을 가지 않으면 사냥터 관리인에게 신의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문후는 다른 사람을 보내라는 신하들의 권유도 물리치고 직접 사냥터 관리인을 찾아가 일정을 취소하고 약속을 지켰다. 신하들은 자신들의 군주가 하찮은 사람과의 약속까지도 지키기를 하늘같이 여긴다며 감탄했고 이후, 나라의 모든 법령과 지시는 아침에 내리면 저녁에 행하게 되었다'

위 이야기는 중요한 약속은 아니지만 사소한 약속일지라도 약속을 반드시 지켜 결국 사람을 얻고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한비가 쓴 '한비자(韓非子)'외저설 좌상편의 약속에 대한 일화다. 비슷한 상황은 사람과 사람 사이 뿐만 아니라 기업과 기업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몇 해 전 판촉회사로부터 제품 공급 요청이 들어왔다. 거리상 회사에서 직접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그 해당 지역에 공급할 만한 도매업체 중 한 업체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업무 특성상 미팅을 할 수밖에 없어 직접 방문을 요청했다. 하지만 약속시간이 지났지만 아무 연락이 없었다. 약속 시간을 훨씬 넘기고서야 전화가 왔다. '급한 용무가 생겨 다음날 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역시 정해진 시간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중요한 용무가 갑자기 생겼다는 숨 가쁜 목소리로 다음 주에 다시 만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공급결정을 빨리 해야 하는 나로서는 다른 회사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다음 주 약속은 무의미하였다. 결국 다른 업체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그 회사 입장에서는 기회비용 측면에서 새로운 약속으로 인해 나와의 약속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거듭 더 나은 약속을 했는지 모른다.

마키아벨리(1469~1527)는 '군주론' 18장에서 약속에 대하여 '약속을 지키기에 불리할 때 그리고 약속을 맺은 이유가 소멸하였을 때, 약속을 지킬 수 없고 지켜서도 안 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항상 둘러댈 수 있어야 한다'라고 조언하였다.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그의 말 답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흉내 내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이제 약속의 유연성은 동창회 모임에서조차 더 이상 관대하지 않다.

사소한 약속일지라도 약속은 반드시 갚아야 할 부채다. 때문에 자신에게 버거운 약속, 지킬수 없는 약속은 애시당초 하지 말아야 한다. 본디 약속이란 장래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진국 ㈜에덴뷰 대표/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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