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영화의 계절! - 김채희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SNS에서 온갖 하늘 사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을이다. 각자의 가을들을 준비하고 맞이하겠지만 영화제 일을 시작 한 이래로 내게 가을은 열정의 계절이다. 매년 11월에 열리는 광주여성영화제를 앞두고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게 된다. 함께 볼 영화들을 선정하고 올해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결정하고 게스트들을 초청하고 행사장을 준비하고 관객들을 만날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시기이다. 뜨거운 여름 즈음에 시작된 일이 끝나고 나면 금방 첫눈이 온다. 단풍구경 같은 건 먼 이야기가 되었다.
영화제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즈음인 지난 여름 폭우가 쏟아지던 날, 지인들을 초대해 ‘김채희의 너와 극장’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너와 극장’은 광주독립영화관 GIFT가 진행하는 독립영화관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이다. 지인들을 초대해서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봤던 영화는 ‘거룩한 분노’였다. 스위스의 여성참정권을 주제로 한 영화는 참으로 매력적인 영화다. 단지 여성참정권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여성으로서의 수많은 경험들과 이야기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스위스가 1990년대가 되어서야 모든 주에서 여성참정권이 허용되었다는 놀라운 사실과 함께 내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여성파업’이었다. 마을의 여성들이 각자의 집을 나와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정에서의 성역할을 걷어차고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말하며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가사의 책임자가 되어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 ‘남이 해준 밥은 다 맛있어.’를 공감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하고 즐거워 보인다.
남편의 허락 없이는 직업을 갖을 수 없는 이의 문제제기는 평생을 가꾼 일터를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빼앗긴 이와 손을 잡게 했고 그리고 또 다른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물론 시련은 금방 들이닥친다. “아빠는 계란 후라이 밖에 못 하냐”고 아이들의 핀잔을 듣는 남편들의 침탈로 그들의 공동체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지만 ‘연결될수록 강해진다.’는 여성들의 연대를 실로 유쾌하고 통쾌하게 보여주는 압도적인 장면이었다.
그들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 뿐 아니라 성적인 권리를 찾아가는 장면도 압권이다. 여성운동의 오래된 패러다임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억압은 늘 일상에서부터 존재하기에 이 영화는 개인의 경험들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승화되고 연결되는지를 재기 발랄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요즘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영화제 기간 동안 여성들이 직장이나 집에서의 노동을 잠시 소홀히 또는 중단하고, ‘거룩한 분노’의 그들처럼, 함께 모여 보고 웃고 울고 말하고 즐기는 거다. 물론 숙식제공은 아니지만. 아, 언젠가 집에서 침낭이나 이불들을 들고 나와 날을 새며 뒹굴거리면서 영화를 보고 수다를 떠는 영화제를 기획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한층 높아진 하늘을 보며 ‘가을아~ ’하고 불러보니 ‘가을은 참 예쁜 이름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광주에서 가을은 영화의 계절이기도 하다. 10월 19일 광주극장영화제를 시작으로 한국청소년영화제, 광주여성영화제, 스웨덴 영화제, ACC 시네마테크 영화제, 광주독립영화제, 마을영화제 등이 12월초까지 진행된다. 광주극장, 광주독립영화관 GIFT,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지에서 따로 또 같이 열리는 다양한 영화제들이 맘껏 개성을 드러내며 펼쳐지는 이 가을, 놓치고 마시고 각자 취향에 맞는 영화를 골라 즐겁게 감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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