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치인의 시암송
보름 전쯤 어느 유명 가수의 북콘서트에 갔습니다. 그곳엔 그분의 많은 팬들과 함께 문인들, 정 관계 인사들도 여러 분 눈에 띄었습니다.
참석한 명사들은 진행자의 요청에 따라 연단에 올라 덕담을 겸한 축하 인사를 건네고 내려갔습니다.
그 중 눈에 띄는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인천시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영길 의원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서 맑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진행자의 부탁으로 연단에 오른 그는 덕담 대신 시를 한 편 낭송하겠다고 하면서 문익환 목사의 ‘꿈을 비는 마음’을 온 마음을 다해 암송했습니다. 아주 긴 시를 한 번의 머뭇거림도 없이 외우는 모습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남북한이 북한의 철로와 도로를 공동조사하는 소식을 들은 터라 이 시가 더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개똥 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 조개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그러니 벗들이여!/ 보름달이 뜨거든 정화수 한 대접 떠 놓고/ 진주 같은 꿈 한자리 점지해 줍시사고/ 천지신명께 빌지 않으려나! (중략)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밝고 싱싱한 꿈 한자리/ 평화롭고 자유로운 꿈 한자리/부디 점지해 주사이다.”
이 시를 쓴 문익환 목사는 통일꾼으로 알려져 있지만 구약을 전공한 뛰어난 학자였지요. 우리말에 능한 문 시인은 신구교 공동번역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시인 운동주와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육성으로 윤동주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었습니다.
“동주는 자상하고 조용하고 내면적인 성품을 가졌지요. 그림과 수학에 뛰어났어요. 문재가 뛰어난 고종사촌 송몽규에겐 열등감을 느꼈던 거 같아요. 난 동주에게 열등감을 느꼈고요. 동주는 이따금 대기만성이란 말을 썼는데 27살까지 살면서 남긴 시가 우리 시문학사에 수준 높고 깊이 있고 사랑받는 시로 남게 되었지요.”
이 ‘꿈을 비는 마음’을 민주화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낭송의 전설‘로 알려진 연세대 교육학과 성래운 교수가 집회장에서 종종 암송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연세대를 다녔던 송 의원이 암송 잘 하는 스승의 영향을 받았을 거란 추측을 해 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송 의원이 여러 시를 외워 두고 모임의 성격에 따라 어울리는 시를 암송한 영상들이 있었습니다. 한 초등학교에서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인천 물리사 치료협회 행사에선 심순덕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색소폰동호회 송년모임에서는 이육사의 ‘광야’를 또 다른 모임에서는 김진경의 ‘낙타’를 암송했더군요.
국민과 주민들에게 얘기할 기회가 많은 정치인이 적절한 시암송으로 자신의 뜻을 나타내는 건 듣는 이에게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기는 멋진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호 암송추천시는 김형영 님의 ‘거울 앞에서’입니다. 이 시를 읽으며 웃음도 연습이 필요함을 느껴봅니다.
거울 앞에서
김형영(1945 ~ )
웃어보려 해도
웃어보려 해도
웃음이 나오지 않아
거울 앞에 와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얼굴이여
평생이 한꺼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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