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격랑에 맞선 그리스 존경받는 국민작곡가

입력 2019.01.31. 11:03
김세경의 월드뮤직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시대의 격랑에 맞선 그리스 존경받는 국민작곡가

김세경의 월드뮤직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나이 열일곱에

첫 콘서트를 열었고

1943년에는 아테네로 가

그리스 권리를 지키는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되었다

대대적인 좌익 소탕작전으로

고문을 당하고 생매장당할 뻔했다

척추가 부러지고 턱이 탈구되

아테네의 군 병원으로 후송됐다

뿌리를 순수한 그리스 음악에서 찾았다

그의 노력은 그리스 문화적인

혁명적 단초가 되었다

메타 심포닉이라는

새 음악을 시도하는데

클래식에 기초해

서구 음악과 그리스 대중음악을

결합한 음악 장르를 발전 시켰다.

“진실은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고 사랑은 우리를 노래하게 만든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과연 진실이 있다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인가? 우리는 쉽게 진실도 외면하고 알면서도 물러서며 불의인줄 알면서도 괜히 나서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선뜻 자신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보통사람들의 소심한 논리를 넘어서서 대의와 명분을 위해, 자기 자신의 이익보다 더 큰 무엇을 위해 기꺼이 자기 한 몸 내어 주는 대단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병활동을 하던 농민들이 그랬고, 나라 뺏긴 설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 하여 쟁기 갈다, 씨 뿌리다 총부리를 잡은 독립군들이 그랬다. 나라의 민주주의를 이룩해 보겠다고 노력하다 군부의 총칼에 목숨 잃은 서럽고 아까운 청춘들의 죽음이 우리 역사에도 굽이굽이 켜켜이 있어왔다.

가까이는 1980년 5월 민중 항쟁을 겪은 광주의 아버지들이 자식을 잃었다. 방송에 몸담고 있었던 사람들은 눈앞에서 방송국이 불에 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엄청난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방송인으로써도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슬픈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런가 방송인이었던 필자의 아버지는 비슷한 역사의 굴곡과 사연과 상처를 지닌 채 살아있는 영웅으로 추앙 받는 그리스의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를 가장 좋아하셨다.

사진1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고향 키오스.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테오도라키스는 그리스의 역사적 배경을 전혀 모르고 들어도 그렇게 서글펐다. 아련했고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웠다. 그렇게 음악이란 예술이란 작가와 그 예술가의 영혼을 담고 있는가 보다. 언어나 그 사연을 몰라도 느껴지는 감정은 비슷하니 말이다.

올 해 나이 구십 사세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1925년 7월 29일 지금은 터키땅이 된 소아시아의 키오스섬에서 태어났고 지금까지 천곡 이상을 작곡한 그리스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의 아버지는 크레타 출신의 시민들을 변호하던 변호사였다. 테오도라키스 네 살 때 외교관이었던 삼촌이 몇몇의 그리스 고전 음악과 함께 대중음악, 재즈 등의 음반과 함께 그에게 축음기를 선물했다. 테오도라키스는 이때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나이 열두살에는 이미 그리스 고전의 시에 음악을 만들어 붙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미 곡을 만들어 선생님과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사진2 어린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그의 아버지

어린 시절에 음악에 매료되 악기 하나도 다루지 않고 그는 독학으로 첫 음악을 작곡했다. 청년 테오도라키스에게는 음악이 전부였지만 그리스가 처한 현실은 그를 그저 음악인으로 예술인으로만 살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가 십 대때 겪은 2차 세계대전은 그에게 정의를 위해 싸울만한 이유가 생겼다. 그의 나이 열일곱에는 첫 콘서트를 열었고 1943년에는 아테네로 가서 영국에 대항해 그리스의 권리를 지키는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되었다. 독일군 점령하에서 결성된 레지스탕스 조직 내, 민족해방전선과 민족 사회해방과의 사이에는 처음부터 이데올로기의 극단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 조직이 주체가 되어 2차 세계대전 후 우익과 좌익으로 나뉜 내전이 시작되었다. 2차 세계 대전 후 그리스를 지배하던 영국은 내전에 힘을 쓸 수 없게 되어 미국의 개입을 요청했고 발칸 반도의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은 엄청난 규모의 함대를 이끌고 상륙하여 우익 정부군을 재건시켰다.

1947년 대대적인 좌익 소탕작전이 펼쳐지면서 일주일간 만 명의 좌익 대원들이 체포되어 유배를 갔는데 여기에 테오도라키스가 포함되 있었다. 그에게 마크로니소스섬은 ‘악몽의 섬’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심하게 고문당했고, 2차례나 생매장당할 뻔했다. 척추가 부러지고 턱이 탈구되 아테네의 군 병원으로 후송됐다가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되자 다시 마크로니소스로 되돌아왔다. 목발을 짚고 다니던 테오도라키스는 마치 유령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심포니에따를 작곡해 희망을 노래했다. 그는 음악을 너무 사랑했고 나라를 너무 사랑했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잘못된 시기에 태어나 음악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한 것일 뿐…

사진3 아버지와 군병원에서

테오도라키스는 사상 재교육을 받고 1950년 아테네 음악원을 졸업했고 1954년 파리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테오도라키스의 기질은 조국의 어지러운 정치를 보며 지켜볼 수 만은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노래의 의미는 바로 폭탄이다. 그래서 나는 그 강한 에너지를 더욱 높은 강도로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다른 곳이 아닌 내 조국 그리스의 비극이 있는 곳에.”

테오도라키스는 수많은 크고 웅장한 작품부터 발레음악,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1960년 그는 그리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뿌리를 순수한 그리스 음악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그리스 문화적인 혁명적 단초가 되었다. 테오도라키스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작품은 모두 그리스와 세계의 시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는 이미 훼손되었다고 생각한 그리스 음악의 위상을 다시 끌어올리려는 여러 시도들을 시행했다. 그리고 그는 메타 심포닉이라는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는데 이는 클래식에 기초를 두고 팝송이나 다른 서구의 음악들, 그리스의 대중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음악 장르를 발전 시켰다.

1963년 폴라리스 미사일의 그리스 배치를 반대하는 평화 시위가 있었고 이 모임을 이끈 정치적 지도자인 람브라키스는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고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 일주일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를 시발로 백만 군중이 뭉치게 된다. 6월 24일 저명한 학자, 예술가, 학생, 노동자, 언론인들이 모여 람브라키스 청년 운동을 조직했고 테오도라키스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67년 테오도라키스는 비밀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지만 음악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64년 테오도라키스는 그리스 영화 조르바의 음악을 맡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고대 크레탄의 전통 춤에서 유래한 시르타키 춤으로 알려진 이 춤은 그리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집단 수용소 마테우젠에서 죽어간 많은 생명들에게 바친 마테우젠의 발라드를 작곡했다. 이는 그리스의 시인 라코보스 캄바넬리스의 시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곡이다. “대학살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뮤지컬”이며 “압도적이며 열정적인, 사람을 사로잡는 멜로디”라는 평을 받았다. 미키스 데오도라키스의 작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그리스어, 영어, 피브리어로 불려지는 이 아름다운 칸타타는 전쟁이란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며 또한 전쟁에서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했다.

사진4 무대위의 젊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군사정부는 테오도라키스가 투옥되자 그의 음악이 국민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킴을 알았다. 그의 곡 “영혼의 행진”, “동경”, “해변에서” 등은 엄청난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1957년 쇼스타코비치와 한스 아이슬러,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작가 아서 밀러와 대중음악가수 해리 벨라폰테 등이 주도한 국제 연대운동으로 테오도라키스는 3년여만에 석방됐고, 곧 세계여론에 밀린 군부는 테오도라키스를 국외로 추방시켰다.

프랑스로 망명한 그는 세계적으로 그리스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투쟁의 일부로서 약 천 회의 음악회를 주최했고 ‘독재에 반대하는 저항의 보편적인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추방된지 석달, 먼저 망명했거나 추방된 수천의 해외 거주 그리스인들의 도움으로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감동적인 연주회를 열었고 십오분동안 커튼콜이 계속되었다. 이때에는 군부가 미니스커트, 축구, 비틀스, 노동조합, 톨스토이, 심지어 수염 기르는 것까지 금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테오도라키스와 좌익 용의자들 음악은 판매도 연주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시켰다. 이때부터 렘베티카라 불리는 그리스 대중가요가 독특한 형태로 완성된다. 렘베티카에 담겨있는 풍부한 선율과 서정성 그리고 민중을 뼈 끝까지 이해하는 이 음악성은 군부체제에 그리스 민중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군부는 테오도라키스의 곡을 듣거나 흥얼거리면 모두 범법자처럼 다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금지곡이 불려지는지 조사하러 다니던 경찰관이 무심코 그의 노래를 흥얼거리다 체포되기도 했다.

사진5 올해로 94세가 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그리스 음악의 산 역사이다.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을 비롯하여 영화음악과 고전음악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작품 활동으로 그리스 현대음악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세운 음악역사의 보물이다. 그의 작품에는 그리스 민중의 고결한 정신세계가 깃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서정성이 풍부하고 독창적인 선율과 웅장하고 폭발적인 사운드가 특징이다. 피로 얼룩진 그리스의 현대사와 민중의 단결, 반파시즘,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음악에 담고 민중들로 하여금 시대적 우울을 이겨내도록 희망을 노래했다. 사람들을 어루만졌고 마음 둘 곳을 만들어주었다. 테오도라키스는 평화를 위해, 자유를 위해, 그리스를 위해 싸웠다. 항상 그는 평화를 노래했다. 이기적 국수주의에 국한하지 않고 국제평화나 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분쟁이 전운으로 감돌 때에도 터키의 대표 아티스트인 줄푸 리바넬리와 함께 사이프러스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콘서트를 진행했다. 나토가 코소보 전쟁에 개입 하는것을 반대했고 이라크 전쟁을 강력히 규탄했다. 팔레스타인 민중 해방을 지지하는 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리고 2000년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지명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평화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작년 여름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심장 마비로 병원에 실려갔다. 우리는 이 살아있는 평화의 아이콘, 전설의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희망의 메시지가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함께 바래야 한다. 그래서 세상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가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그래서 감사하게 여기고 또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그러했듯이. 제발 그가 우리 곁에 오래도록 함께 하기를 기원해본다.

김세경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회의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문화강의 교수로 활동했다. 월드뮤직 애호가이자 전문가로 지역방송에서 대중에게 월드뮤직을 소개하는 방송인으로 활동했다. 호주에서 아트앤 인테리어 데코레이션 공부를 한후 지역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며 신진작가들과 외국인 화가들을 후원하는 전시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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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젊은 활기가 가득한 곳 일명 '광주의 동리단길' 동명동에서 보해양조가 보해소주 스몰 액션 스토어(팝업스토어)를 지난달 12일에 시작했다. 스몰 액션 스토어는 MZ세대와 친환경·자연환경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겨냥한 힙한 팝업스토어다. 팝업스토어는 바다를 보호하는 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기획된 것으로 보해소주 스몰 액션(SMALL ACTION) 캠페인의 첫걸음이다. 보해소주 스몰 액션 캠페인은 스몰 액션 캠페인이라는 이름과 같이 '작은 실천으로 환경을 지키자'는 취지로 플로깅 활동을 진행한다. 플로깅(plogging)이란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말한다. 스몰 액션 캠페인은 보해가 가지고 있는 '바다의 보물'이라는 뜻을 담은 사명처럼, 쓰레기를 줍고 줄이는 작은 행동이 모여 보물 같은 바다를 소중히 하자는 취지에서 이번 캠페인을 준비했다.보해양조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2030세대가 가득하고 광주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동명동을 선택했다. 플로깅 활동을 참여하게 되면 생분해성 수지 위생장갑, 비닐봉지, 대나무 집게로 구성된 친환경 플로깅 체험 키트를 받아 동명동 일대에서 플로깅할 수 있다. 이후 가져온 쓰레기 분류를 마치면 소금 아이스크림으로 리워드를 받을 수 있다. 또한 SNS 업로드와 설문 참여 시 보해소주 굿즈를 추가로 증정한다. 참가자들은 플로깅에 동참하면서 육지의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결국 소중한 바다를 지키는 첫걸음이란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벤트를 만들었다.수거된 쓰레기는 작가들과 협업을 거쳐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해 팝업스토어 곳곳에 설치될 예정이다. 방문객들은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쓰레기에서 보물로(From Trash To Treasure)' 거듭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보해소주 스몰 액션 스토어'는 7월 12일까지 총 두 달간 운영되며 휴무일 없이 오후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방문 가능하다. 방문객들을 위해 플로깅 체험 외에도 친환경 에코백, 양말, 보해소주가 더해진 프리미엄 플로깅 키트 등 다양한 굿즈 판매도 함께 진행된다.보해소주에서 해양보호 캠페인으로 이어진 나비효과보해소주는 기존 소주와 다르게 소금을 넣었다는 가장 큰 차별점이 있다. 보해소주는 세계 3대 소금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핑크소금, 안데스산맥 호수 소금, 신안 토판염을 사용하여 소주 특유의 쓴맛과 강한 알콜향을 잡는 솔트레시피를 통해 기존 소주의 '과당'으로 맛과 향을 가리는 제조방식을 깬것이다. 2021년 출시 후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보해소주'가 역대 신제품 가운데 가장 높은 판매량을 보이며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보해양조는 보해소주에 사용되는 소금이 결국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건강한 바다 환경을 만들기 위한 해양 환경 보호 캠페인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보해양조는 어떤 기업인가?보해양조는 목포에 본사를 둔 광주전남 대표 주류전문 기업이다. 보해소주 말고도 잎새주, 복받은 부라더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보해소주 팝업스토어 어디서 할까?보해양조와 아우르(OWLR)가 콜라보한 보해소주 스몰 액션 팝업스토어는 광주 동명동 아우르 팝업존(별채)에서 진행 중이다. 아우르는 지난달 오픈한 ㈜광지주의 첫 브랜드다. 전남 특산물을 활용한 다이닝 바, 그로서리 마켓 등 전남 로컬푸드를 알리는 복합문화공간이다.해양 환경 보호를 위한 보해양조 행보지난달 12일 문을 연 광주 동명동 팝업스토어를 통해 그 시작을 알렸으며, 이어서 25일 목포 보해소주 플로깅 센터 & 스몰 액션 스토어를 오픈했다. '보해소주 플로깅 센터'는 목포 여객터미널과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보해는 여객터미널 이용객들이 배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플로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플로깅 센터를 열게 됐다. 섬에 들어가는 관광객들도 플로깅 키트를 받아 관광을 하며 플로깅에도 동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참가자들 중 플로깅하고 있는 사진에 해시태그 'pickup_bohae'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추첨을 통해 플로깅과 관련된 굿즈를 제공한다. 플로깅 센터와 스몰 액션 스토어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운영되며 휴무일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방문 가능하다.문예송기자 rr3363@md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