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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된 비극'···제2의 김재순 없기를

입력 2020.05.25. 17:38 수정 2020.05.26. 13:35
비정규직 근무 아버지도 산재
아들 사망에도 연차 못 쓰고
다시 돌아가 야근 근무 하는 형편
온 가족 뿔뿔이 흩어져 연락 뚝
“아들같은 희생자 다시는 없어야”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광주·전남지부가 25일 광주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노조는 모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청년 노동자가 파쇄 설비 사고로 숨진 사고와 관련,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사진 = 독자 제공) 2020.05.25. photo@newsis.com

"다시 회사로 돌아가 야근을 해야 합니다. 비정규직이라 연차를 쓸 수 없어서 반장에게 사정을 말하고 근무시간을 바꿨습니다. 아버지지만 연락도 잘 못하고 살고…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고 김재순(26)씨의 아버지(52)는 25일 강현철 광주지방고용노동청장에 요구사항을 전달한 후, 다시 일을 하러 충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가락 한 마디가 없고, 뼈가 가죽을 뚫을 듯 튀어나온 왼손을 연신 오른손으로 가리는 모습을 보고 기자가 묻자 김씨는 "2002년에 일하다 산재를 당했다"고 했다. 아버지 김씨도 열악한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한 명의 노동자였다.

아들 재순씨는 지난 22일 광주 광산구 한 폐기물 처리 업체에서 일하다 파쇄기에 미끄러져 숨졌다. 재순씨는 2018년도께 입사해서 중간에 2개월을 쉰 것을 빼고 2년 가까이 정규직으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원수가 10명인 작은 회사는 7명의 현장직과 3명의 사무직이 있었다. 현장직인 재순씨는 수지 파쇄기에 이물질이 끼자 이를 밀어 넣으려다 그만 파쇄기로 떨어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원래 파쇄기 작업을 담당하던 동료는 출장중이었고, 재순씨는 안전장비 없이 홀로 일하다 10분만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재순씨의 시신은 참관할 가족과 친지도 없어 장례 하루만에 화장됐다. 김씨는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을 장례가 끝난 뒤에야 알았다.

김씨는 "경황이 없어 생각나지 않았다는 둘째의 연락을 통해 어제(24일) 들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오늘 아침 열차를 타고 충남에서 광주로 왔다"고 말했다.

김씨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재순씨가 어릴때 부부는 이혼했고 재순씨는 잠시 작은아버지에 맡겨졌다. 재순씨의 동생도 떨어져 살았다.

재순씨는 성인이 되자마자 일거리를 찾아 나선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의 생애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를 찾기 어려웠다. 그의 아버지도 충남 한 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가족들에 신경쓰지 못했다. 2002년에는 산재를 당해 왼손을 다쳤다.

재순씨에게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이 지난해 6월로, 정처없이 떠돌던 아들이 광주에 정착했다는 말을 듣고 "잘했다"고 말했다고 한 것이 전부였다.

가족이라는 의식조차 희미해질 무렵 아들의 죽음이라는 형태로 찾아온 가장의 책임감에 김씨는 조심스러워했다.

김씨는 "한때 우리 가족도 잘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가족들을 잘 챙길 수 없었다"며 "연락도 잘 하지 못했고…이런 자리에 왔지만 아들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와 함께한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재순씨의 죽음을 두고 검찰이 과실사로 사건을 지휘하고 있고, 사업주도 과실사를 주장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 작업자가 접근하면 기계가 멈추는 등 수지 파쇄기가 갖춰야 할 안전 및 방호장치를 사업주가 설치하지 않았고, 재순씨의 단독 작업을 방치하면서 인명 피해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4년에도 목재 파쇄기에서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도 밝혔다.

김씨는 "사업주는 나에게 매우 죄송하다며, 그렇지만 아들의 죽음은 과실사라고 했다"며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아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고 아들 같은 희생자가 없길 바랄 따름이다"고 말했다.

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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