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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윤씨 종가 설 맞이 "코로나 이겨내려면 전통·예법도 바꿀 수밖에"

입력 2021.02.09. 16:49 수정 2021.02.09. 17:00
해남 윤씨 종가 설맞이 풍경
600년 역사 불구 올핸 거리두기
종친들 4명씩 시간차 두고 방문
“조상에 예 표하는 마음 같지만
국가적 재난 상황에 협조·양보“
설 명절을 앞두고 지난 8일 해남 윤씨 18대 종손 윤형식옹이 "조상을 기리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는 방역이 먼저다"고 말했다. 오세옥기자 dkoso@srb.co.kr

"예년 같으면 종친 100명이 모여 차례를 지냈지만 올해는 네 명씩입니다. 코로나를 이겨내려면 조상님께 올리는 예법도 바꿀 수 밖에 없지요."

코로나19가 수백년 전통과 역사를 이어온 종갓집 설 명절 풍경을 바꿔놨다.

민족 최대 명절 설을 앞두고 지난 8일 찾은 해남 윤씨 종택 녹우당(綠雨堂)은 한적했다. 고산 윤선도·공재 윤두서의 후손인 해남 윤씨 어초은공파는 평소에도 검소한 차례를 지내기로 유명했지만, 올해는 그 적막함이 더했다. 코로나로 전국의 혼란이 사그러들지 않으면서 600년 전통의 종가도 올해는 조용한 설 명절을 보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해남 윤씨 18대 종손 윤형식(88)옹은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면 가족이 모이지 않았다. 하물며 재난 상황인데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잃지 않더라도 정부 방역 지침을 따르는 것이 먼저다"며 올해는 간소화된 차례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남 윤씨 종택인 이곳에서는 매해 명절마다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00여명의 종친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며 선조에 예를 표했었다.

직계부터 방계에 이르는 수 많은 일족이 한데 모여 전통 차례를 올리는 모습은 지역에서도 큰 볼거리였으나 올해는 그 전통을 과감하게 깨기로 했다.

설을 맞아 지난 8일 해남 윤씨 18대 종손 윤형식옹이 "조상을 기리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는 방역이 먼저다"고 말했다. 오세옥기자 dkoso@srb.co.kr

윤 옹은 "코로나 사태로 정부에서 5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면서 종친들 사이에서 제사를 어떻게 지낼지 의견이 분분했다"며 "결국 600년 전통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데 발맞추는 것이 선조의 뜻을 바르게 지키는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종친들이 한데 모여 우애를 다지는 것도 중요하나 나라에 큰 환우가 닥친 만큼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차례에는 한 번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을 4명 이하로 대폭 줄였다. 시간차를 두고 차례를 지내면서 방역 지침에 걸맞게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도 유지하기로 했다. 꼭 참여해야 하는 인원 외에 다른 종친들의 방문은 자제할 예정이다.

원래도 간소했다는 윤씨 종가의 차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예부터 고기나 생선은 올리지 않는 등 검소한 차례를 지냈다는 설명이다.

윤 옹은 "종갓집 차례라고 하면 화려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옛 가르침을 되새겨 과일과 나물을 올리고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을 올릴 따름이다"고 했다.

해남 윤씨 종택 녹우당. 오세옥기자 dkoso@srb.co.kr

윤씨 종가의 이 같은 검소함은 가훈이나 다름없는 고산 윤선도의 기대아서(寄大兒書)에 따른 것이다. 기대아서는 고산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로 '검소'와 '소박'에 대한 삶의 당부가 담겼다.

윤 옹은 "고산은 편지를 통해 '음식이란 배를 채우는 것으로 족하고 의복이란 몸을 가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소박한 것으로 하고 사치스러움을 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환란의 시대에 600년 역사의 종가가 가져야 할 사회적 책무도 잊지 않았다. 윤 옹은 "어려운 시대일수록 옛 성현의 말씀을 되새겨 늘 경계하고 자만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한다"며 "평소같은 설 명절을 보낼 수는 없겠지만 조상을 기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같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전했다.

김성희기자 pleasure@srb.co.kr·해남=박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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