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이토록 힘겹고 험난하다니, '진짜'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이래저래 걱정이 앞선다.
정의로운 '을'들의 항변으로 알려졌던 서울시향 박현정 대표 사직 파문이 슬프게도 을의 탈을 쓴 가짜들의 조작으로 드러났다.
마음 복잡하다. 이들의 작태를 비판하자니 진짜 을들의 항거나 비명이 짓밟힐까 싶고, 을들의 소리없는외침을 살리자니 가짜들의 횡행을 방조할까 싶다.
'갑질'의 전형으로 불명예 퇴진한 서울시향 박 전 대표가 6년 여 만에 대법원 판결로 진실을 회복했다. 실체적 진실은 안타깝고 잔인하다. 시쳇말로 '법적으로' 승소한 것인지, '을'이 문제가 있는 것인지 등의 궁금증은 하찮아졌다. 판결을 재구성 하자면 박 전 대표의 사임은 시향 단원들이 기존 관행에 굴복하지 않은 새 대표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갑질로 덧씌워 중도하차시킨 사건으로 드러났다.
박 전 대표 주장에 따르면 서울시향은 운영이 방만하기로 유명해 유럽에서 '이지 타깃'(쉬운 먹잇감)으로 통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대표를 속이면서까지 당시 서울시향 예술감독이었던 작곡가 정명훈씨 소속사 입맛대로 미국 서부투어 공연을 추진한 것이 발단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걸 문제삼자 대표를 인권유린 등으로 고발했다는 것이다. 2014년, 인권 유린과 갑질의 비난 속에 물러나면서 억욱함을 호소했지만 갑의 변명 쯤으로 해석됐다. 그의 혐의는 대부분 무혐의로 끝났고 유일하게 재판까지 간 '손가락 폭행' 사건은 조작으로 드러났다
남 일 같지 않다. '광주는 외지 사람들의 무덤'이라는 시립예술단에 관한 공공연한 비밀스런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초빙된 세계적 감독들이 인연의 폭을 넓히기는커녕 겨우 임기를 채우고 떠난 현실 너머에는 어떤 배경이 있다는 거다. 과거 예술단원들이 이곳 사정(?)을 잘 모르는 감독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여차직하면 몰아내기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서울시향 일부 이야기로 시립예술단까지 싸잡아 매도하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허나 구름같던 여러 이야기들이 사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멀거리는 것 까지 어찌해볼 도리는 없다. 더욱이 그게 예술단에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인간성 공격에서 공적인 형식을 띤 올가미까지 외부인들은 수많은 트랩을 건너야하고 일부는 굳이 트랩을 건너면서까지 머물기를 포기하고 떠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갑' '을'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위세에 우리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그전까지는 문제 없었는데 시끄럽다'며 사안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보다 삼인위호(三人爲虎 없는 호랑이도 세사람이 있다고 우기면 있는 것처럼 된다는 것을 일컫는 한자 성어) 에 휘둘리는 세간에 대한 경계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와함께 '을'의 곤궁한 처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로도 살펴야할 듯 싶다. 이번사안이 '을'의 이야기였다면 진실이 밝혀졌을까. 법의 형평성도 문제겠지만 수년의 시간을 투자해 진실을 밝혀낼 여력이 '을'들에게는 없다. 그렇게 수많은 을들의 억울한 진실은 세간에 묻혀왔다. 그러니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보려는 노력은 한 인간의 생을 다시 세우는 일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국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 · [공연 리뷰] 일본인의 양심으로 전한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진상
- · [공연리뷰]안정성은 곧 예술적 풍부함으로
- · [공연 리뷰] 아직 오지 않은 소녀의 광복
- · [공연리뷰] 동시대 창작 레퍼토리 위한 과감한 시도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