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트페어가 이례적으로 여름에 먼저 선을 보인다.
광주신세계 갤러리에서 16일부터 열흘 동안 아트광주2020 프리뷰가 열린다. 가을 본 전시에 앞선 프리뷰지만 성격이나 내용이 완전히 다른 특별무대다.
아트광주 여름 프리뷰는 신세계백화점이 코로나 19로 힘들어하는 지역 예술인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전국 3개(광주·대구·부산) 갤러리에서 함께 전개되는 무대 중 하나로 아트광주와 협업으로 마련했다.
예술도시라고 하지만 기업들의 본격적인 예술 후원이 흔치 않은 현실에서 신세계 갤러리의 이같은 움직임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역에서 메세나를 넘어 직접 후원에 나선 기업은 한국화 공모전 '광주화루'를 운영하는 광주은행이 유일한 실정이다. 이에앞서 지역 메세나 선두격인 영무토건의 신진작가창작지원전 정도가 있었다.
이같이 척박한 현실에서 광주에 진출한 신세계의 행보는 뜻깊다. 지역 진출기업들의 지역참여 방식이야 다양하겠지만 문화부문에서 신세계갤러리의 지역미술발전 기여는 허투루 넘기기 어렵다.
광주신세계는 광주에 서비스를 시작하던 1996년부터 갤러리를 함께 선보이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천만원 상금의 전국 공모 '신세계미술제'를 론칭해 미술도시 광주의 명성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 세미나와 해외연수 등 당시로는 혁신적인 지원체계, 상금규모 등이 더해지며 전국의 작가들이 광주로 몰려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2002년 '광주신세계공모전'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지역작가 발굴에 나섰다. 이같은 시도는 명실공히 작가 산실의 요람이 됐고 이곳 출신 작가들은 지금 광주미술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1회 손봉채 작가를 비롯해 김상연 김영태 김진화 윤남웅 이구용 이이남 이정록 임남진 정운학 등 작품성으로 평가받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곳 출신들이다.
기업의 이같은 예술 후원이 단지 기업의 성향으로 끝날 일일까. 올 봄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쇼핑이 투표보다 중요하다'라는 도발적인 책으로 정가의 화제를 불러왔다. 강 교수의 주장은 새겨들을만하다.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정치권·언론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방관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소비자운동은 마지막 자구책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좀 풀어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물건 하나 사는 것도 정치적 행위의 적극적 방식이고 이를 통해 사회를 바꿔보자는 것, 변화를 꿈꿔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앞서 해외에서 불어왔던 공정무역, 생산자 노동 댓가를 지불하자는 운동이나 정치적·윤리적 소비운동의 연장이다.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해 일본 도발로 발생한 일본산 불매운동으로 일본자동차의 한국 점유율이 현격히 떨어진 일, 일본산 맥주가 안팔리는 것 등도 연장선에 있다.
문화도시 시민들의 소비는 어떠할까. 예술에 투자하는, 혹은 관심 기울이는 지역기업, 진출기업에 더 많은 관심, 나아가 소비를 이끌어서 기업의 예술투자를 촉진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하여 광주 진출 기업이라면 문화예술에 투자하고 후원할 때 기업에게 이익이 된다는 문화도시 소비의 가르침이 선순환되는 구조를 이끌어가기를 꿈꿔본다.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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