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황현산, 이청준·조정래·김승옥·최하림·임철우…
비평과 소설, 시 등 한국문단의 별처럼 빛나는 거장들이다.
김현과 황현산은 한국 문학비평의 지평을 열어젖힌 두 거목이다. 김현의 지적인 풍모와 황현산의 유려한 문체는 어디에도 비견할 바가 없다. 비평의 두 거장 중 한명만으로도 눈이 부신데 이 둘이 함께라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문학비평에 출신이 대수인가 만은 이들이 모두 목포 출신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굳이 '한국현대비평을 남도가 이끌어왔다'고 사소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그들이 나고 자란 땅의 바람과 햇빛을 함께 나눴다고, 그들의 문화적 세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설이라고 다를까. 한센인을 매개로 일제 강점기 실상과 인간의 욕망과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당신들의 천국'의 이청준(장흥),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자를 그려 공안당국을 발칵 뒤집은 '태백산맥'의 조정래(순천), 일제 강점기 농민들의 자의식과 사회문제를 다룬 '암태도'의 송기숙(장흥), '한국 문학사 불멸의 천재, 진정한 한글세대를 일군 명문장가'로 불리는 '무진기행'의 김승옥(순천) 등 한국 현대소설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 역시 이곳 출신이다. 광주 양림동에서 시성을 키워온 김현승, 고향 장흥에서 소설을 일구는 한승원 등 이루 거론하기도 어렵다.
가깝게는 10년의 시간을 투자해 5·18을 복원해낸, 오월 문학의 금자탑으로 평가받는 '봄날'의 임철우(진도)가 있다. 내밀한 디테일과 사실을 얼개로 문학적 상상력을 더한 '봄날'은 형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기자출신으로 구술문학의 새 장을 열어젖힌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남도에는 차마 가 닿기도 어려운, 별처럼 빛나는 이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하늘에 별들이 지천으로 특별할 것 없듯이 남도에서 문학적 성취나 위상이란 새로울 것도 없는, 내로라하는 평범함의 연속이다.
새삼 남도의 문인들을 되뇌이는 것은 최근 이들 출신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다양한 기림 사업 소식들 덕분이다.
허나 반가움보다 아쉬움이 크다. 장기적이고 대중들 속에 살아남을 듯한 움직임은 없고 많은 경우 문학관 등 기록적(전시성) 사업에 머무른다. 그나마의 몇몇 기림사업들도 행사성에 그친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하거나 남도 밖 사람들이 찾아 나설만한 프로그램은 드물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살펴야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고향에서는 문학세계를 호흡하고 향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추진돼야한다. 고향의 뜨거운 환대는 다른 이의 발걸음에 빛을 더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남도가 이들의 발자취를 한데 묶는 유무형의 문화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들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서 전개되는 아시아문학포럼에 지역문인 탐방 코스를 연계하는 식이다. 내로라하는 작가를 배출하지 못한 지역은 연고도 없는 작가를 초빙해 인문의 향을 더하고 문화관광 경쟁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남도는 보석을 쥐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문단의 자취를 살려내 자라나는 세대에게 상상력의 터전을 제공하는 일은 어쩌면 현세대의 책무에 가깝다. 지역사회가 얻게될 문화관광 경쟁력은 놀라운 덤일 것이다.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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