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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발언대- 늦가을 어느 날 빛고을의 책 잔치 풍경

@황광우 (사)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입력 2020.12.02. 11:19 수정 2020.12.02. 18:06
-나익주의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출간을 축하하며-

황광우(작가·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지금 파란 색 바탕에 소주병 그림이 내 앞에 있다. 소주병에는 여러 낱말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금은 폭탄', '교육은 상거래', '여성은 물건'… 지난 11월 20일 출간된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의 표지이다. '한뼘책방'서 정성껏 갈무리하여 세상에 내놓은 나익주 작가의 신간 서적이다.

작가 나익주와 나는 같은 '58년 개띠'이기 때문에 함께 보낸 세월의 연식이 제법 오래일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익주 선생이 일곡의 어귀에 사는 나를 찾아온 것은 딱 10년 전, 2010년 11월이었다. 이후 나익주 선생과 나는 무슨 연애하는 사이도 아닌데, 나의 집사람이 시샘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특수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전남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서강대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공부했으며,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레이코프로부터 인지언어학 이론을 배운 연구자 나익주. 그는 교수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서 젊은 날 이 대학 저 대학으로 보따리 장사(시간 강사)를 하였다. 낮에는 중등학교에 서 영어를 가르치고, 밤에는 논문을 쓰는 성실한 연구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느낌은 '교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 불우한 학자'였다.

어느 날 나는 나익주 선생이 번역한 책이 15권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교수들 중 10여 권이 넘는 책을 번역한 분을 나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1년 당시 나는 전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학생들을 자주 만나고 있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만나고 싶은 명사가 있는가? 다 만나게 해주고 싶다. 단, 손석희만 빼고..."

그런데 한 학생이 전남대의 나익주 교수님을 뵙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익주를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었더니 서울의 친구가 전남대 나익주 교수님의 강의를 들어 보라고 추천하였다는 것이다. "아, 광주는 나익주 선생을 몰라보지만 서울은 아는구나."

그 순간 한 가지 의문이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광주 사람들의 의식 구조 속에 광주 출신을 무시하는 습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연세대, 고려대에서는 나익주의 강연을 열었어도 아직까지 광주의 어느 대학에서도 나익주의 강연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 날 책 잔치의 백미는 제자들의 소회였다. 젊은 시절 10대의 청소년들과 함께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교사의 특권이지만, 30년이 넘게 사제 간의 우의를 돈독히 나누는 나익주 선생이 무척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정기오(서강고 졸) ; "영어 수업은 기억이 안 나요. 선생님은 수업 시간 중에 '피.피.피' 노래만 불렀어요.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엔 싣고 어델 갔지" 선생님 때문에 동기들이 운동권으로 많이 빠졌어요."

조지명(광주동성고 졸) ; "나익주 선생님한테 거의 매일 두드려 맞았어요. 선생님은 정말 이상하게 하루 종일 나를 때렸어요. 당시 신고했으면 아마 처벌받았을 거요. 나쁜 담임이었어요. 그런데 이유는 모른지만 지금까지 찾아뵙고 있어요."

이은주(광주체육고 졸) ; "...(울먹이며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함)...3학년 때 우리학교로 오셨어요. 키는 큰데 근육이 없어 보였어요. 어느 날 아침 교탁에서 엎어치기를 해불까 생각하면서 가볍게 잡아당겼다가 그냥 놓아주었어요. 제가 유도선수로서는 대성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을 보고서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이후 교육대에 진학한 데는 선생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고요. 선생님은 지금도 저에게 교사로서의 역할 모형이 되고 있습니다."

김은미(광주여고 졸); "선생님은 여학생들에게 적응하지 못해 몹시 힘들어 하였어요. 커다란 백팩을 메고 뛰어가던 모습,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모습이 생각나요. 무언가 끌리는 면이 있었어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서 저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사) 인문연구원 동고송은 창립식 때 밝힌 약속 그대로 가난한 인문연구자를 위해 조촐한 책 잔치를 열었다. 나는 '나이 육십에 저술의 뜻을 성취한 나익주 선생의 신간'을 축하하면서 아래와 같은 시를 읽어드렸다.

평생 두 가지 일에 종사했네 平生從事雙業耳(평생종사쌍업이)

낮엔 교직, 밤엔 연구 晝也敎壇夕硏究(주야교단석연구)

이제 저술에만 전념하니 今也專念唯著述(금야전념유저술)

그를 따르려 해도 따를 수 없네 雖欲從之末也由(수욕종지말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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