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덕보, 원효계곡에 풍암정 짓고 은거
부인 이씨, 홀로 지내다 정유재란 때 순절
권필의 꿈에 술취한 덕령의 한탄 '취시가'
85. 취하였을 때의 노래여, 恨의 노래여 - 풍암정, 취가정에서
선조는 김덕령이 형장에서 죽었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다, 저렇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그나마 김덕령의 죽음에 대한 측은함은 있었던지 시신만은 거두도록 하였다. 역모를 일으킨 이몽학의 시신이 저잣거리에 걸리고, 한현이 능지처참된 것에 비하면 대접을 받은 셈이다.
심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김덕령의 시신은 수레에 실려 광주로 내려온다. 아우 김덕보와 친척 그리고 부하들이 소달구지 뒤를 따랐다. 김덕령의 시신은 고향 마을 광주 석저촌에 도착한다. 시신에는 부인 이씨가 손수 만든 수의가 입혀지고, 장례식은 암울하게 치러진다. 역적으로 몰렸으니 조정에서 보낸 관리가 장례를 삼엄하게 통제하였다. 김덕령은 무등산 이치마을 남서쪽에 묻힌다.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 그였지만, 돌아온 것은 누명과 죽음뿐.#그림1왼쪽#
이는 마치 1980년 5월18일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에 죽은 이들의 장례를 연상하게 한다. 민주투사들 역시 폭도로 몰려 광주 망월동에 묻히었다.
김덕령의 가족과 친척, 부하들은 부조리한 세태를 원망하며 세상과 등진다. 김덕령의 마지막 부탁으로 풀려난 최담령과 최강 등은 영남과 호남의 방어사에게 배속되었다. 이후 선조는 최담령을 장수로 임명하지만, 그는 겁쟁이 행세를 하고 폐인노릇을 한다.
김덕령의 손위 처남 이인경도 병을 핑계로 사임하고는 시골에 은거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덕령의 죽음을 목격한 전라도의 선비들은 모두 숨어버리고 다시는 의병으로 나서지 아니하였다. 목숨 바치며 충성하였지만 돌아온 것은 죽음뿐인데, 어느 누가 기꺼이 나서려하겠는가?
무엇보다도 가장 한이 맺힌 이는 부인 이씨와 동생 김덕보였다. 부인 이씨는 자식도 없이 홀로 지내다가 1597년 정유재란 때 순절한다. 이순신이 서울로 잡혀가고 원균이 이끄는 수군이 칠천량 전투에서 몰살당하자 왜군은 전라도를 초토화하였다. 남원성이 무너져 수 만 명의 군관민이 한꺼번에 죽었다. 김덕령의 부인 이씨도 담양 추월산으로 피난을 간다. 왜적들은 이곳까지 추격하여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부녀자를 겁탈하였다. 그녀는 정절을 지키려다가 보리암 근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다.#그림2오른쪽#
김덕령의 동생 김덕보(1571-1627)는 세상이 싫었다. 무능한 임금과 국난 중에도 당쟁만을 일삼는 조정대신, 모함을 일삼는 용렬한 장수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는 1597년에 화순군 동복의 어느 마을에 은거하다가, 지리산 백운동으로 다시 숨는다. 그러다가 1602년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무등산 원효 계곡아래에 조그만 집을 짓고 죽을 때까지 지낸다. 이 집이 바로 풍암정(楓巖亭)이다.
김덕보는 1627년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방준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나이가 많고 병이 들어 전장에는 나가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해 한 많은 세상을 뜬다. 안방준은 김덕령의 원통한 사연을 김덕보에게서 듣고 삼원기사(三寃記事)를 썼다 한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여름이다. 다시 역사인물 답사를 시작한다. 충장사를 둘러보고 나서 무등산 원효계곡 아래에 있는 풍암정을 간다. 풍암정은 충장사에서 계곡 아래로 곧장 내려가면 있다. 내려가는 길목에 김덕령의 작은 할아버지인 김윤제의 제실이 있다. 풍암정에 도착하여 안내판부터 살펴본다.
이 정자는 조선중기 김덕보가 세운 정자이다. 1614년(광해군 6) 정홍명이 쓴 풍암기의 내용으로 미루어 1614년 이전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풍암이라는 명칭은 단풍과 바위가 어우러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정홍명(1592-1650)은 한글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의 아들이다. 그가 지은 풍암기에는 “풍암정은 수많은 기암괴석 사이마다 100여 그루의 단풍나무가 끼어 있어 푸른 시내의 물빛이 붉을 정도로 무성하다”라고 하였다.
정자에는 풍암정사 현판과 풍암기 그리고 임억령, 고경명, 안방준, 이안눌 등의 한시가 편액되어 있다. 풍암정사 현판 바로 위에는 풍암 김덕보가 지은 칠언율시 편액이 걸려 있다. 한시를 읽어본다.
마음 가는 대로 읊음 漫詠
늦게야 단풍나무 언덕에 작은 집을 지으니
바위 앞에는 대나무, 뒤는 산기슭
양지바른 창문은 겨울에도 따뜻하고
높은 곳에서 물을 보니 여름에도 차갑네.
영약은 언제나 신선과 짝이 되어 썰고
좋은 책은 빌려다가 야인 野人들과 같이 보네
몸 숨길 편안한 곳이 따로 있는데
무엇하러 바다 밖의 봉래산을 찾을 것인가
이제 발길을 취가정으로 옮긴다. 취가정(醉歌亭)은 김덕령이 살았던 광주 충효동 마을 근처에 있다. 김윤제의 별당인 환벽당 바로 옆이다. 취가정은 아름드리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입구에는 안내판과 취시가 비가 있다. 먼저 취가정 안내판을 읽어 본다.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추모하기 위하여 고종 27(1889)년에 김만식을 비롯한 후손들이 세웠다.
취가정이란 이름은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한 김덕령 장군이 술에 취한 모습으로 권필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노래를 부르자, 권필이 시를 지어 원혼을 달랬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즉 김덕령 장군이 취했을 때 부른 노래라는 뜻으로 취가정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석주 권필(1569-1612)은 이안눌과 함께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의 문집 '석주집'에서 취시가를 찾았다.
꿈속에 작은 책 한권을 얻었는데 바로 김덕령의 시집이었다. 첫머리에 실린 시 한 편은 '취시가(醉時歌)'였다. 내가 이 시를 여러 차례 되풀이해 읽어 보고서 그 뜻을 알았다. 그 가사는 이러하다.
술 취했을 때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를 듣는 이 아무도 없어라.
나는 꽃과 달 아래에서 취하고 싶지 않고,
나는 공훈을 세우고 싶지도 않다오.
공훈을 세우는 것은 뜬구름과 같고,
꽃과 달 아래에서 취하는 것도 뜬 구름일세
술 취했을 때 부르는 노래여,
아무도 내 마음 알아주는 이 없구나.
다만, 긴 칼을 잡고 밝은 임금 모시길 원할 뿐이네.
내가 잠에서 깨니 서글픈 비감(悲感)이 들었다. 그래서 절구 한 수를 지었다.
장군이 지난날에 창을 잡았으나
장한 뜻이 중도에 꺾이니 운명인 걸 어찌하랴
지하에 계신 영령의 한없는 원한이
취시가 한 곡조에 분명히 드러나누나.
취시가는 권필이 꿈에서 얻은 것을 쓰고 답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시에는 김덕령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가 담겨있다. 권필의 현실 비판 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권필의 장인은 송제민(1549-1602)이다. 송제민은 김덕령을 의병장으로 적극 추천한 사람이다. 권필은 장인으로부터 김덕령의 옥사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한편 정자 전면의 네 기둥에는 주련이 부착되어 있다.
충성은 일월을 꿰고
기개는 산하를 덮었는데
취하여 땅에서 부르는 노래
감동하여 하늘에 들렸네.
忠貫日月 충관일원
氣壯山河 기장산하
醉歌於地 취가어지
聲聞于天 성문우천
충용장 김덕령, 그는 정녕 불운아이다. 원통하게 죽은 후 65년 동안이나 죄인 취급을 당하다가 1661년에야 신원이 회복되었으니.
- 때아닌 가을에 폭염주의보? 역대 가장 더운 9월 중순 무등일보 DB. 최근 광주·전남지역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9월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는 등 11년 만에 가을폭염이 관측됐다.18일 광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기상청은 지난 16일 광주와 담양에 폭염주의보를 발령했다. 이튿날인 17일에는 폭염주의보가 나주와 화순까지 확대됐다.폭염주의보 첫날인 16일 광주 낮 최고기온은 31.3도로 평년 기온(26.9도)보다 4.4도 높았다.이튿날인 17일에는 낮 최고기온이 33.5까지 높아져 평년 기온(27도)과 6.5도 차이가 났다.특히 18일에는 낮 최고기온이 34.5도까지 치솟아 9월 중순 최고기온을 갱신했다. 이전까지 9월 중순의 최고기온 기록이던 33.7도(1998년 9월 19일·2008년 9월 18일·2008년 9월 19일)을 큰 격차로 따돌렸다.광주지역에서 9월 중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것은 이번이 관측 이래 네 번째다. 지난 1998년에 처음으로 '한가을 폭염'이 나타난 데 이어 2008년과 2011년에도 9월 중순까지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기상청은 한반도 주위의 고기압에 의해 따뜻한 기류가 유입되며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 아래쪽에는 여름 기단인 북태평양 고기압이 아직까지 물러나지 않고 태평양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를 우리나라로 불어놓고 있다. 동해상에는 또 다른 고기압이 자리를 잡고 한반도 서쪽 지방에 더운 공기를 유입시킨다.여기에 18일에는 햇살을 막아주던 구름까지 걷히면서 폭염지수를 더욱 높였다.기상청 관계자는 "고기압이 따뜻한 공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남해상에서 태풍 '난마돌'이 북상하면서 뜨거운 수증기를 몰고왔다"며 "태풍이 지난 후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며 본격적인 가을 날씨가 이어질 예정이다"고 말했다.한편 폭염주의보는 폭염특보의 한 종류로 이틀 이상 하루 최고 체감온도가 33도를 웃도는 등 더위로 인한 큰 피해가 예상될 때 발효된다. 이전까지는 기온을 기준으로 폭염특보를 발령했으나 지난 2020년부터는 기온과 습도를 함께 고려하는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
- · 전남 공공배달앱 먹깨비, 농협카드과 손잡고 경품 이벤트
- · '당신도, 광주에서는 e스포츠 선수'
- · 시암송
- · 현대차 美 전기차공장, 조지아로···6.3조원 투입 '年30만대'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