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말의 품격은 어디서 오는가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03.05. 00:00

김태희 박사·다산 연구소 소장

스포츠는 즐겁다. 상업적이란 비판도, 정치적이란 비판도 있지만, 공정한 룰 아래 기량을 다퉈 승부를 가리는 것은 매력적이다. 스포츠에는 스타가 있기 마련이다. 스타에겐 이야기가 따른다.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의 관심을 끈다. 경기가 끝난 선수의 말은 진한 감동을 남기기도 한다.

얼마 전 평창올림픽의 그날 우리는 카메라의 안내에 따라 한 스타를 주목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500미터에 출전한 이상화 선수였다. 그는 이미 '빙속 여제'로 우리에게 각인됐지만 승리를 낙관할 수는 없었다. 경기란 알 수 없으니까. 더욱이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 선수가 최근 우월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긴장된 경기가 끝났다. 2등이었다. 아쉬웠다. 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때 경쟁자이자 승자인 고다이라 나오 선수가 다가와 그를 감싸 안았다. 제스처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위로와 격려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잘했어. 나는 여전히 너를 존경해."고다이라 나오는 배려심이 있는 선수였다.

0.01초를 다투는 승부의 세계에서 선수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다른 선수를 배려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경쟁자도 자신과 같은 처지라 생각하면 공감하지 못할 것도 없다. 어쩌면 경쟁자에 대한 배려와 존경은 스스로를 존중한 결과일 수 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의 이야기가 이를 말해준다.

쇼트트랙의 김아랑 선수가 순위에 들지 못했지만 승자인 최민정에게 다가가 축하하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여유를 주었다. 김아랑 선수는 노란 리본으로 질문을 받았다. 그의 절제된 대답은 훈훈했다. 팽목항에 계신 분한테 "고맙다"는 연락이 왔다며, "그 한 마디로 큰 위로를 받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올림픽을 치르는 내내 기분 좋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서로 위로하고 감사하는 데 여기에 무슨 말을 더하랴.

지난 1월에는 정현 선수가 테니스 호주 오픈 4강에 진출해 우리를 즐겁게 했다. 그의 인터뷰가 화제가 됐다. 제이티비시 뉴스룸에 나온 그에게 손석희 앵커도 물었다. 손 앵커는 정현 선수의 인터뷰 솜씨가 혹시 타고난 것이 아닌가 추측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현 선수에게서 의외의 답이 나왔다.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인터뷰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모양이군요. 교육을 따로 받을 정도면 …."

"그렇죠. 거기에서 팬들과도 소통을 해야 되고, 거기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선수, 상대 선수한테도 폐를 끼칠 수 있고 하니까. 그러다 보니까 좀 교육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렇다. 말은 중요하다. 한마디 말이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줄 수도 있고, 마음에 상처 내는 칼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인상의 선수가 우물쭈물 인터뷰를 마무리하면 좀 아쉽다. 말은 진심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하지만, 훈련에 의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마음과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인터뷰 교육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뭐였습니까? 저도 한 수 좀 배우고 싶어서…."

"질문을 받으면 일단 상대 선수를 배려해야 되고, 그리고 저를 응원해 주시는 팬들, 가족, 스폰서, 저를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한테 감사의 뜻을 전해야 되고, 질문마다 다르기는 한데, 기본은 그게 시작이에요."

인터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배려와 감사였다. 승자에겐 축하를, 패자에겐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것이 스포츠 선수의 매너이다. 또한 승리한 사람이라면 감사의 말이 당연하다. 어느 누구도 혼자의 힘으로만 잘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매스스타트에서 1위를 한 이승훈 선수가 인터뷰를 하는데, 의례적인 감사의 말이 이어지다 한 대목이 주의를 끌었다. 자원봉사자에 대한 감사였다. 진심이 묻어났다.

말의 품격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배려와 감사다. 상대방과 관련자들을 배려하는 마음과, 오늘의 내가 있도록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 그런 말은 품격이 있고, 듣는 이에게 힘을 준다. 그런 말은 세상을 좀더 살 만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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