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5·18민주화운동, 이번 기회에 ‘민중항쟁’으로 바꿔야

@김성 광주대 초빙교수 입력 2019.12.29. 13:36

김성 광주대 초빙교수

지난 20일 과거의 광주교도소 공동묘지에서 확인되지 않은 40인분의 유골이 나오면서 5·18당시 행불자들과의 관련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언론은 1980년 당시 광주교도소가 ‘격전지’였다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격전지’보도는 정리 안된 역사 때문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광주교도소 북쪽으로는 고속도로가, 남쪽으로는 광주~담양간 지방도가 가까이 지나가고 있다. 당시 고속도로는 통제되어 차량 이동이 별로 없었으나 지방도는 농산물 수송이나 광주와 담양 사이를 오가는 차량이 빈번히 이용하는 도로였다. 그런데 당시 전남대에서 철수한 3공수여단이 광주교도소에 주둔하면서 이 도로로 이동하는 차량들을 무장 시민군 차량으로 오인사격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부상자 가운데는 어린 소녀도 있었다. 그런데 계엄군은 ‘폭도들이 여러 차례 교도소를 습격했다’고 발표하였다. 설령 시민군이 접근했다고 치더라도 이들은 교도소에 계엄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엄군 발표처럼 ‘여러 차례 교도소를 습격’하는 무모한 일을 저질렀을 리 없다. 자칫하다간 ‘격전지’라는 보도가 80년, 100년이 지난 뒤 문헌을 조사·연구하는 연구자들에 의해 ‘범죄자를 수용하고 있는 교정기관에 대한 습격’이 사실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된다.

이는 39년이 지나도록 5·18의 진실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1988년부터 있었던 국회 광주특위 활동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하고 종료됐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그 일당에 대한 수사결과 대법원으로부터 반란·내란목적살인·뇌물수수 등의 판결을 받았으나, 검찰은 집단발포 명령자와 헬기사격 등을 밝혀내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40년도 안 돼 ‘북한특수군 침투설’같은 허무맹랑한 주장부터 ‘가짜 유공자설’까지 횡행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출범하는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교도소 습격’ 왜곡부터 모든 논란거리를 확실히 규명하고, 법제화하여 ‘진실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명칭’이라고 본다. 명칭은 어떤 사건에 대한 성격을 결정짓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5·18은 ‘민주화운동기념일’로 되어있다. 이 명칭은 내란군부와 6·10항쟁을 벌인 국민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노태우 정권이 어정쩡하게 붙여놓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51개 기념일 가운데 근래 지정된 ‘6·10민주항쟁기념일’(1987년 6월 10일 기념)과 ‘부마민주항쟁기념일’(1980년 10월 16일 기념)은 ‘민주항쟁’이라는 단어를 붙여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사상자를 포함하여 4천명이 넘는 피해자를 낸 5·18은 가장 소극적 개념의 명칭을 가지게 됐다. 제 1야당마저 ‘헛소리’를 하는 추세로 볼 때는 이런 소극적 개념의 명칭을 그대로 놔둘 경우, 시대가 더 흐르면 ‘쌍방 과실’‘양비론’‘양시론’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5·18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 잡게 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광주에서는 관공서를 제외하곤 이미 5·18을 ‘민중항쟁’으로 부르는 게 보편화 되어있다. 그런데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역사에 죄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명칭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6·10과 釜馬는 ‘민주항쟁’ … 개칭 필요

그러나 과거 ‘4·19의거기념일’(1973년)을 ‘4·19혁명기념일’(1995년)로, ‘6·25사변일’을 ‘6·25전쟁일’로 바꾼 적도 있다.

하여 40주년을 맞는 내년, 2020년에는 학계와 언론계, 5·18단체를 중심으로 ‘민주항쟁’으로 할지 ‘민중항쟁’으로 할지 다양한 토론을 갖고 통일된 명칭을 도출해 내 변경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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