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백년전 '전염예방에 관한 건'

@한순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입력 2020.10.04. 14:15

백년전, 1920년 무렵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이다. 당시 경찰청 경무국장의 지시사항이 신문에 실렸다. 그 가운데 위생과에는 '1.위생상태의 개선향상에 관한 건'과 '2.전염예방에 관한 건', 두 가지 안건이 전달되었다.

'위생상태의 개선향상에 관한 건'은 조선의 위생상태를 양호하게 개선하기 위해 당해년도 위생비를 수립하고 병원과 자혜의원을 증설한다는 계획이다. 각 도청에 위생기술원을 배치하고 지방에 공의(公醫)를 늘려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보호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전염예방에 관한 건'은 악질(惡疾), 천연두, 두창 등이 유행하므로 위생사상을 향상함과 더불어 전염병 예방을 위한 방역계획 수립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전염병과 유행병이 창궐하던 식민지 조선에서 위생과 방역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과제였다.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 위생정책을 소개하고자 백년전 신문을 인용한 건 아니다. 또한 나의 눈길이 머문 곳은 위생과 전염병 예방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 내용이 아니다. 마지막 부분에 덧붙인 구절이 가시처럼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찔렀다.

-衛生을說할際는可及的言語를平易하고難解의文字를避하야民衆을理解케하고('동아일보'1920.4.21. 3면)

한자를 한글로 바꾸고, 띄어쓰기를 해서 풀어서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즉 위생에 대해 말할 때에는 되도록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 어려운 문자를 피하여 민중이 이해할 수 있게 하라는 뜻이다. 전염병의 위기가 초래하는 사태의 심각성만큼이나 말과 글을 알아듣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글을 빼앗긴 당시에 저 신문 위의 글자들을 이해하면서 전염병의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신조어들로 도배한 신문들을 보고 있으려니 여기가 어느 나라인가 싶다. 코로나19 방역 당국은 매일매일 예방수칙과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상세하게 문자로 전달하고 있지만 확진자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모양새다. 방역수칙을 전달받아도 이해할 수 없는 디지털 문맹자들이 적지 않은 탓인가.

법원은 개천절 '드라이브 스루 집회'를 허용했고 정부는 '가이드 라인'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방역수칙을 충실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 대체 맞는 발음인지를 떠올렸다. '드라이브 뜨루' '드라이브 드루''드라이브 쓰루''드라이브 스루'. 방역에 충실한 요즈음, 깨끗해진 손가락으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드라이브 스루'라는 발음을 따르기로 한다. 혹은 '차량집회' '보도지침' '길잡이'를 써보기로.

시공간을 더 먼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17세기 말 유럽의 한 도시에서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밀접한 접촉을 방지하기 위해서 조치와 법규를 섬세하게 마련했다. 외출의 순번을 정해 왕래가 필요한 사람들만이 특정한 장소를 다녀갈 수 있었다.

-왕래가 허락되는 것은 감독관들, 동장이나 읍장들, 그리고 호위병들이고, 그것도 감염된 집들 사이와 시체들 사이로 한정되며, 죽어도 상관없는 '매장부 인부들'은 그대로 방치되는데, 그들은 "병자를 운반하고, 시체를 매장하고, 청소를 하는 등 비천한 일을 하는 하층민들"이다.(미셸 푸코, 오생근 옮김, '일망 감시방법',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나남출판, 1994, 290쪽.)

코로나19 확진자와 '불법집회'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는 가운데,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어가고 있는 비천한 사람들의 이동 경로와 일상에는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 전염균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전파된다. 전염병이 지나간 자리는 불평등한 것들로 가득 쌓인다. 이 몹쓸 전염병은 불평등한 현실과 소외된 사람들을 드러내는 데에는 분명 쓸모가 있다. 한순미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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